1994년 개봉한 《덤앤더머》는 북미 박스오피스에서 2억 4,700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그해 코미디 장르 1위를 기록했습니다. 처음 이 숫자를 봤을 때 솔직히 좀 의아했습니다. 그냥 바보 둘이 가방 들고 미국 횡단하는 영화 아닌가 싶었는데, 막상 보고 나서는 이게 왜 30년 넘게 회자되는지 납득이 됐습니다.줄거리와 구조: 바보 로드무비가 스릴러를 품은 방식영화는 로이드 크리스마스(짐 캐리)와 해리 더네(제프 다니엘스)라는 두 루저가 콜로라도주 아스펜까지 가방 하나를 전달하려고 떠나는 여정을 담습니다. 단순해 보이는 이 설정이 사실은 꽤 정교하게 짜여 있습니다.핵심은 맥거핀(MacGuffin)입니다. 맥거핀이란 서사를 이끄는 소품이나 목표물이지만, 그 자체보다 그것을 쫓는 인물들의 행동이 진짜 이야기가 되..
팽이가 멈추면 현실, 안 멈추면 꿈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 믿음 자체가 이미 인셉션(Inception)당한 결과였습니다. 개봉 16년이 지난 지금 다시 봐도 숨이 막힐 정도였는데, 막상 엔딩을 뜯어보니 제가 놓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팩트검증: 그 엔딩, 현실 맞습니다 — 하지만 팽이는 안 멈춥니다일반적으로 "팽이가 멈추면 현실"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제가 직접 영화를 다시 되짚어보니 그건 절반짜리 해석이었습니다. 팽이는 코브(Cobb)의 토템(Totem)입니다. 여기서 토템이란 꿈과 현실을 구분하기 위해 각 팀원이 개인적으로 소지하는 물건으로, 오직 본인만 그 무게와 질감을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이 핵심입니다. 문제는 원래 그 팽이가 코브 것이 아니라 아내 멜(Mal)의 ..
착하게만 살면 결국 이긴다고 배웠는데, 정말 그럴까요? 짐 캐리 주연의 2000년작 을 다시 꺼내 보다가 이 물음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았습니다. 20년 넘게 참고 또 참던 순경 찰리가 어느 날 전혀 다른 인격 행크를 탄생시키는 이 영화, 제가 직접 봤을 때 느낀 건 단순한 코미디 그 이상이었습니다.짐 캐리의 이중인격 연기, 그냥 웃자고 만든 영화가 아니었다처음 볼 때는 그냥 짐 캐리 얼굴 보러 틀었습니다. 덤앤더머, 에이스 벤츄라 다 챙겨봤을 정도로 짐 캐리 오버액션을 좋아하는 편이라 기대치가 이미 높았거든요. 그런데 막상 보고 나니 웃음 뒤에 꽤 무거운 게 남더라고요.영화 속 주인공 찰리는 로드아일랜드 경찰로, 원래 자수성가해서 경찰서의 절반이 결혼식에 참석할 만큼 인망이 두터운 인물입니다. 그런데 아..
어떤 영화는 두 번째로 볼 때 완전히 다른 영화가 됩니다. 20대에 처음 봤을 때 화양연화는 그냥 미적지근한 사랑 이야기였습니다. 대사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왜 이 둘이 그냥 같이 도망가지 않는지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작년에 특별판 개봉 소식을 듣고 극장에 다시 앉았을 때, 저는 처음 보는 영화를 보고 있었습니다. 죄책감과 수치심, 연민과 사랑이 어떻게 한 얼굴을 가질 수 있는지, 이번에는 모든 대사가 이해됐습니다.미장센이 말을 대신한다 — 공간과 색채의 언어왕가위 감독의 연출 방식 중 가장 먼저 체감되는 것은 미장센(mise-en-scène)입니다. 미장센이란 화면 안에 배치되는 모든 시각 요소, 즉 공간, 조명, 색채, 배우의 동선까지 포함하는 개념으로, 대사 없이도 인물의 내면을 전달..
어릴 때 봤던 애니메이션을 다 큰 어른이 다시 틀었을 때, 오히려 더 깊이 빠져드는 경험을 해본 적 있으십니까. 저는 최근에 을 다시 꺼내 봤는데, 75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였습니다. 어릴 때는 그냥 귀엽고 신기한 판타지였는데, 지금은 뭔가 마음 한켠을 건드리는 게 다릅니다. 이 글은 그 여운을 정리하면서, 이 작품을 처음 접하는 분이나 다시 볼까 고민하는 분들께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씁니다.성장애니로 다시 보니 보이는 것들고양이가 말을 하고 왕국이 등장하는 판타지 설정인데, 왜 이렇게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걸까요. 제가 처음 이 작품을 봤을 때는 20대였었습니다. 그때는 그냥 고양이가 귀엽고 바론이 멋있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다시 보니, 주인공 하루가 처한 상황이 머릿속에서 쉽게..
애니메이션은 어린이를 위한 장르라는 말, 정말 맞는 걸까요. 저는 이 작품을 처음 봤을 때 20대였고, 다시 봤을 땐 사회생활을 한창 하던 30대였습니다. 두 번의 감상에서 제가 울컥했던 장면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어릴 땐 화려한 온천장 배경과 기묘한 신들의 모습에 눈을 빼앗겼다면, 지금은 이름을 빼앗기는 장면에서 멈칫하게 됩니다. 같은 영화인데 이렇게 다르게 읽히는 작품이라니, 신기할 뿐이였습니다.터널 너머의 세계 — 배경이 만들어내는 낯선 질감일반적으로 판타지 애니메이션이라고 하면 밝고 명랑한 이세계(異世界)를 떠올리기 쉽습니다. 그런데 제가 경험한 이 영화의 배경은 그 기대를 정확히 비틀어 놓습니다. 터널을 지나자마자 펼쳐지는 세계는 아름답기보다는 불안하고, 자유롭기보다는 억압적입니다.이세계(異世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