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고를 때 딱히 끌리는 게 없어서 그냥 틀어봤는데 생각보다 훨씬 재밌었던 경험, 한 번쯤은 있으실 겁니다. 저도 취업 전 어느 한가한 날, 딱히 볼 게 없어서 비디오로 틀었다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눈을 떼지 못한 영화가 있습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톰 행크스가 나온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볼 이유가 됐고, 실화 바탕이라는 사실이 호기심을 자극했습니다. 그게 바로 캐치 미 이프 유 캔이었습니다.

강박증이 말해주는 것, 프랭크의 불안
저는 처음 이 영화를 볼 때 프랭크가 손톱을 뜯거나 껍데기를 뜯어내는 장면들을 그냥 습관 정도로 넘겼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장면들이 사실 영화의 핵심 심리를 담은 장치였습니다.
프랭크가 보여주는 이 반복적인 행동들은 심리학에서 말하는 신체 반복 집중 행동(BFRBs, Body-Focused Repetitive Behaviors)으로 분류됩니다. 여기서 BFRBs란 손톱 뜯기, 머리카락 뽑기처럼 자신의 신체에 반복적으로 집중하는 행동을 통해 내면의 긴장이나 불안을 해소하려는 강박적 패턴을 의미합니다. 단순한 버릇처럼 보이지만 심리적 압박이 심할수록 빈도가 높아진다는 특성이 있습니다.
프랭크의 불안이 어디서 왔는지는 영화 초반부에 이미 암시됩니다. 부모님이 함께 춤을 추는 모습을 바라보던 프랭크의 눈빛, 그리고 그 행복이 아버지의 파산과 부모님의 이혼으로 한순간에 무너지는 장면. 제가 처음 봤을 때는 그냥 배경 스토리라고 생각했는데, 이게 프랭크의 모든 행동을 설명하는 뿌리였습니다.
실제로 아동·청소년 심리 연구에 따르면 부모의 이혼을 경험한 자녀 중 상당수가 이혼의 원인을 자기 자신에게 돌리는 자기귀인(Self-Attribution) 경향을 보입니다. 여기서 자기귀인이란 외부에서 발생한 사건의 원인을 자기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인지적 패턴을 뜻합니다. 이런 무의식적 자기귀인이 프랭크를 "내가 무능해서 이 상황을 막지 못했다"는 만성적 불안 상태로 몰아넣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출처: 미국 심리학회 APA).
이런 시각으로 보면 프랭크의 껍데기 뜯기 강박은 단순한 행동 이상입니다. 감독이 수많은 강박 행동 중에서 굳이 껍데기를 뜯는 것을 선택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껍데기란 곧 겉모습, 외면을 상징하고, 이는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로 이어집니다.
껍데기를 바꿔 입는 소년, 그 이면의 자기 증명 욕구
프랭크가 16세에 팬암 부기장, 하버드 의대 출신 의사, 버클리 법대 변호사를 사칭할 수 있었던 건 단순히 얼굴이 잘생겨서가 아닙니다. 솔직히 저는 이 장면들을 보면서 사기를 치는 배짱과 언변이 부럽기까지 했습니다. 내성적인 편인 저로서는 그게 하나의 대단한 능력처럼 느껴졌으니까요.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기꾼이라 하면 물질적 이득이 목적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프랭크도 처음에는 그렇게 보입니다. 하지만 영화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가 벌어들인 돈은 부모님을 다시 이어주기 위한 수단에 가깝습니다. 돈 자체가 목적이 아니었다는 거죠.
프랭크의 아버지는 두 가지 상반된 메시지를 아들에게 전했습니다. 하나는 양키스 연설로 대표되는 "겉모습이 성패를 가른다"는 논리이고, 다른 하나는 생쥐 비유처럼 "나는 다른 놈들과 다르게 태어났다"는 자기기만적 사고방식입니다. 이 두 메시지를 동시에 흡수한 프랭크는 껍데기를 바꿔 입는 방식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 한 셈입니다.
정체성 형성 이론(Identity Formation Theory) 관점에서 보면 이는 에릭슨(Erik Erikson)이 말한 정체성 혼미(Identity Diffusion)에 해당합니다. 정체성 혼미란 청소년기에 자아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하고 다양한 역할을 충동적으로 시험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프랭크는 파일럿, 의사, 변호사라는 껍데기를 번갈아 입으면서 진짜 자신이 누구인지 확인하려 했던 것입니다.
문제는 아무리 그럴싸한 껍데기를 걸쳐도 불안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프랭크는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졌지만 곁에 남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매년 크리스마스 이브마다 형사 칼에게 전화를 거는 장면이 저는 지금도 기억에 남습니다. 돈을 아무리 쌓아도 채워지지 않는 게 있다는 걸, 프랭크 스스로도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프랭크의 주요 사기 행각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팬암(Pan Am) 부기장 사칭: 유니폼 하나로 수많은 사람을 속인 가장 대담한 신분 위조
- 하버드 의대 출신 의사 사칭: 의료 현장에서 실제로 근무하며 전문 지식을 습득
- 버클리 법대 변호사 사칭: 루이지애나 주 검찰청 근무를 주장하나 실제 기록 불분명
- 위조 수표 제작: 팬암 로고 수표를 복제해 현금화하는 방식으로 자금 조달

실화라는 말의 무게, 그런데 실제로는
저는 이 영화를 본 뒤 실화 바탕이라는 사실에 한동안 감탄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관련 자료들을 찾아보다가 뭔가 이상하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일반적으로 이 영화는 프랭크 애버그네일의 놀라운 실화라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 기록들과 비교해보면 상당히 다른 부분이 많습니다.
프랭크는 회고록에서 5년 동안 FBI를 피해 다니며 17세부터 20세 사이에 대형 사기를 쳤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실제 법원 기록에 따르면 그 기간 대부분을 뉴욕 컴스톡 교도소에서 보낸 것으로 확인됩니다. 밖에서 활동한 기간은 길어야 3개월 남짓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팬암을 상대로 250만 달러의 수표를 위조했다는 주장도 마찬가지입니다. 팬암 측이 나중에 밝힌 내용에 따르면 실제로 확인된 위조 수표는 단 1장이며 금액은 1,500달러 미만이었습니다. FBI 공식 사이트에서도 프랭크의 사건은 '스몰 포테이토(Small Potatoes)', 즉 사소한 사건으로 분류되어 있습니다(출처: FBI 공식 사이트).
FBI에서 40년을 근무했다는 주장 역시 관련 기록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프랭크를 쫓던 요원 중 한 명인 로버트는 생전 인터뷰에서 "프랭크를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고 직접 밝혔을 정도입니다.
이쯤 되면 스필버그 감독이 프랭크 애버그네일의 실화를 영화화한 게 아니라, 사실상 본인의 이야기를 프랭크라는 인물에 투영한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감독 본인도 어린 시절 부모가 이혼을 했고, 엄마가 아버지의 친한 친구와 바람이 났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영화 속 프랭크의 가정사는 실제 프랭크보다 스필버그에 훨씬 더 가깝습니다.
결국 이 영화는 "희대의 사기꾼 실화"라기보다는, 가정의 붕괴와 정체성 혼미를 겪은 한 소년에 대한 감독의 고백에 더 가까울지도 모릅니다. 프랭크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쫓은 칼 핸래티가 결국 그에게 진짜 아버지 역할을 하게 되는 결말도, 아버지를 향한 스필버그 자신의 복잡한 감정을 담은 것처럼 보입니다. 사실 여부를 떠나, 이 영화가 오래 기억에 남는 이유는 거기에 있습니다.
참고: https://youtu.be/V1IdDCVKM78?list=PLcEuJ8LThepD0k51rmmGZ-Aapsrf-2C4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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