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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넬리 (카스트라토, 울게하소서, 바로크 오페라)

이 영화 포스터를 처음 봤을 때 그냥 클래식 음악 영화겠거니 했습니다. 그런데 '울게하소서'가 흘러나오는 순간, 저도 모르게 멈춰버렸습니다. 목소리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는, 그 경계 어딘가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가 가슴을 먹먹하게 짓눌렀습니다. 1705년에 태어나 유럽을 흔들었던 카스트라토 파리넬리의 이야기, 음악과 윤리 사이에서 지금도 논쟁이 이어지는 주제입니다.카스트라토, 목소리를 위해 치른 대가카스트라토(Castrato)란 변성기 이전에 거세 수술을 받아 소년의 음역을 성인의 폐활량과 결합한 남성 성악가를 말합니다. 쉽게 말해 아이의 목소리와 어른의 몸이 합쳐진, 자연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소리를 만들어낸 존재입니다.파리넬리의 본명은 카를로 마리아 미켈란젤로 니콜라 브로스키로, 12살에 거세 ..

영화 리뷰 2026. 6. 28. 20:04
이벤트 호라이즌 (코즈믹 호러, 고어, 무삭제판)

저는 SF와 공포가 섞일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1997년 작품이라는 말에 반신반의하면서 틀었다가, 보다가 진짜로 지릴 뻔 했습니다. 이벤트 호라이즌은 우주선이 차원의 문을 통해 지옥을 통과한다는 발상 하나로 SF, 호러, 고어를 절묘하게 버무린 영화입니다. 개봉 당시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지금까지도 재평가가 이어지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코즈믹 호러, 우주가 무서운 진짜 이유혹시 우주 배경 공포영화를 보면서 "그래봤자 귀신 나오는 거잖아" 싶었던 적 있으신가요?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달랐습니다.이벤트 호라이즌이 구사하는 공포의 본질은 코즈믹 호러(Cosmic Horror)입니다. 코즈믹 호러란 인간의 이성과 인식 능력 자체를 초월한 거대하고 이해 불가능한 존재나 ..

영화 리뷰 2026. 6. 27. 12:38
미저리 리뷰 (케시 베이츠, 감금 스릴러, 연기력)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오랫동안 이 영화를 피해왔습니다. 제목도 유명하고, 다들 명작이라고 하는데 어쩐지 손이 안 가더라고요. 막상 보고 나서야 후회했습니다. 1991년 작품이 이렇게 심장을 쥐어짜는 영화일 줄은 몰랐거든요.케시 베이츠의 연기가 진짜 문제입니다영화를 다 보고 나서 한동안 케시 베이츠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이게 좋은 게 아닌 게, 눈 감으면 그 눈빛이 그냥 떠오르는 겁니다. 제가 직접 보면서 느낀 건, 이 배우가 무서운 게 아니라 진짜 저 동네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 사람이라는 점이었습니다.케시 베이츠가 연기한 애니 윌크스는 소위 말하는 스토커(stalker)의 교과서적 형태를 보여줍니다. 스토커란 특정 대상에 대한 병적 집착을 바탕으로 지속적인 추적, 감시, 접촉을 시도하는 행동 패턴..

영화 리뷰 2026. 6. 25. 09:32
아메리칸 뷰티 (욕망, 각성, 아름다움)

TV에서 이 영화에 대하여 알게 됐을 때 그냥 중산층 남자의 막장 코미디 정도로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저는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2000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포함해 5개 부문을 휩쓸었던 영화, 아메리칸 뷰티. 왜 이 영화가 그토록 오래 회자되는지, 보고 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됩니다.욕망이 충돌하는 평범한 가정의 해부레스터 번햄이라는 인물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아내에게 무시당하고, 딸에게 외면받고, 직장에서는 정리해고를 통보받는 남자. 그런데 그가 딸의 친구 앤젤라를 보는 순간, 무언가가 깨어납니다.이 영화가 탁월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레스터의 각성은 단순히 중년 남성의 일탈이 아니라, 오랫동안 억눌려온 자아가 폭발하는 순간으로 그려집니다..

영화 리뷰 2026. 6. 24. 09:27
아마데우스 (살리에리, 모차르트, 질투)

살리에리가 악당이라고 생각하셨나요? 어릴 때 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 나서 다시 이 영화를 보니, 어쩐지 살리에리가 미워지지 않더군요. 오히려 그 마음이 너무 이해가 됐습니다. 1984년 작품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영상미와 음악, 그리고 두 인물의 이야기가 지금도 이렇게 가슴을 치는 이유가 있습니다.살리에리, 그리고 평생 지워지지 않는 그늘아마데우스(Amadeus)라는 제목은 모차르트의 미들 네임에서 왔습니다. 라틴어로 '신에게 사랑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이상하게도, 제목이 모차르트가 아니라 살리에리를 위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신에게 사랑받지 못한 사람이 신에게 사랑받은 자를 평생 증오하고 또 경모했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영화는 노년의 살리에리가 정..

영화 리뷰 2026. 6. 23. 09:58
가타카 리뷰 (우생학, 유전자 차별, 의지)

이 영화에 대해서 저는 거대한 SF 스펙터클을 기대했습니다. 우주선이 폭발하고 외계인이 등장하는 그런 류의 영화 말입니다. 그런데 스크린에 펼쳐진 건 조용하고 절제된 한 남자의 이야기였습니다. 1997년 작 가타카, 지금 다시 봐도 촌스러움이 없는 이 영화가 왜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야 더 깊이 와닿는 건지, 그 이유가 궁금해지지 않으십니까.우생학이라는 불편한 역사, 그리고 가타카의 세계가타카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우생학(Eugenics)의 역사를 잠깐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여기서 우생학이란 인간의 유전적 형질을 개량하여 우수한 자손을 늘리고 열등한 자손을 줄이려는 사상으로, 19세기 후반 프랜시스 골턴이 처음 체계화한 개념입니다. 들으면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제 역사에서 이 사상이 어떤 참극을 낳았는..

영화 리뷰 2026. 6. 22.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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