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인 납치물인 줄 알고 봤다가 뒤통수를 맞은 영화가 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저는 넷플릭스에서 아무 기대 없이 재생 버튼을 눌렀다가 마지막 10분 동안 말 그대로 멍하니 화면만 바라봤습니다. 2003년에 개봉했지만 흥행에 실패한 영화, 지구를 지켜라입니다. 포스터만 보면 코미디 B급 영화처럼 보이는데, 이 영화가 왜 20년이 지난 지금도 '비운의 명작'으로 불리는지 직접 보고 나서야 납득했습니다.흥행 참패와 뒤늦은 재평가, 그 이유2003년 개봉 당시 이 영화의 관객 수는 약 8만 명 수준에 그쳤습니다. 지금 기준으로도 처참한 성적이지만, 당시 천만 관객 시대를 막 열기 시작하던 한국 영화 시장 분위기를 감안하면 사실상 완전한 흥행 실패였습니다. 제가 직접 찾아보니 장준환 감독은 이 작품 이후 오랫동안 ..
제가 이 영화를 알게 된건 영화관 로비에서 포스터를 지나치면서 봤을 때였는데, 밝은 색감에 익살스러운 분위기가 전부였습니다. 누가 봐도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영화를 보고 나서 받은 메시지는 전혀 달랐습니다. 김씨 표류기는 도심 한복판에서 표류하는 인간의 이야기로, 지금 봐도 전혀 낡지 않은 영화입니다.고립 — 서울 한강 한복판에서 혼자가 된다는 것이 영화가 흥미로운 건 표류(漂流)의 공간이 무인도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표류란 의지와 무관하게 어딘가에 떠밀려 고립되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런데 주인공 남자 김씨(정재영 분)가 떠밀린 곳은 다름 아닌 서울 한강 한가운데 자리한 밤섬입니다. 뒤를 돌면 63빌딩이 보이고, 유람선이 코앞을 지나다니지만 아무도 그를 발견하지 못합니다...
픽사가 2018년 선보인 애니메이션 코코는 멕시코 전통 축제 '망자의 날(Día de los Muertos)'을 배경으로 삼은 작품입니다. 처음 이 영화를 보러 갔을 때 솔직히 반신반의했습니다. 배경이 멕시코라는 점이 낯설게 느껴졌거든요. 그런데 극장을 나오면서 제가 한 첫 마디는 "이거 진짜 명작이다"였습니다.멕시코 세계관, 낯설지만 이질감이 없었던 이유직접 극장에서 봤는데, 영화가 시작하고 5분도 채 되지 않아 '멕시코스럽다'는 느낌이 오히려 영화에 빠져드는 이유가 됐습니다. 소품 하나, 골목 풍경 하나까지 멕시코 문화를 세밀하게 담아낸 덕분입니다.이 영화의 감독인 리 언크리치는 기획 초기에 멕시코 현지를 직접 방문해 장소, 음식, 의복, 거리 문화 등을 수집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애니메이션 제작 ..
중학교 2학년 때였습니다. 토요일 밤, 이불을 뒤집어쓰고 동생과 나란히 TV 앞에 앉았던 기억이 아직도 선합니다. 주말의 명화에서 흘러나온 시네마 천국은 그날 저에게 영화가 큰 감명을 줄 수 있다는 걸 처음으로 알려준 작품이었습니다. 그 시절 학교 벽에 붙은 포스터로만 봤던 영화가, 그날 밤 저의 마음을 완전히 흔들어 감동의 눈물을 흘리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알프레도와 토토, 세대를 넘은 우정이 남긴 것이 영화를 봤을 때는 우정 이야기인 줄만 알았습니다. 어린 토토가 시골 극장의 영사기사 알프레도 아저씨와 친해지는 과정이 그 당시 저에게는 가장 인상 깊었거든요. 남녀 간의 로맨스가 아닌, 세대를 뛰어넘는 유대감이라는 게 그때의 저에게 신선하게 느껴졌습니다.이 영화의 배경은 1940년대 이탈리아 시칠리아 ..
1999년 가을, 군 전역 이틀 뒤에 비디오방 알바를 시작했습니다. 새벽 두 시, 손님이 끊긴 카운터에서 혼자 틀어놓은 영화가 트루먼 쇼였습니다. 일반적으로 당시 관객들 사이에서 이 영화는 매트릭스에 밀린 조용한 작품으로 기억되는 경우가 많은데, 제 경험상 그 평가는 좀 다릅니다. 오히려 그 고요함이 새벽의 빈 비디오방과 기묘하게 어울렸고, 보고 난 뒤 한참 멍하게 앉아있었습니다.세기말이라는 배경, 그리고 이 영화가 달랐던 이유1999년 말은 분위기 자체가 남달랐습니다. 이정현의 '와'가 거리를 채우고, 매트릭스가 영화관을 점령하던 시절이었죠. 세기말 종말론과 새 천년에 대한 기대가 동시에 뒤섞인, 지금 돌이켜봐도 꽤 이상한 공기였습니다. 시내 중심 비디오방이다 보니 주말이면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고, 매..
캐스트 어웨이를 보기 전까지는 그냥 현대판 로빈슨 크루소 정도겠거니 했습니다. 무인도에 떨어진 남자가 어찌어찌 살아남다가 구조된다는, 뻔한 줄거리일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막상 보고 나니 이건 단순한 생존 영화가 아니었습니다. 상실과 고독,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 인간의 의지를 이렇게 조용하게 묵직하게 담아낼 수 있다는 게 꽤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비행기 추락, 그 공포가 현실처럼 느껴졌던 이유영화 초반, 페덱스(FedEx) 전용기가 태평양 상공에서 항로를 이탈하고 결국 바다로 추락하는 장면은 제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무서웠습니다. 이 영화말고도 추락 장면을 다루는 영화가 많지만, 여기서는 주인공의 시점에서 묘사되는 방식이 달랐습니다. 캄캄한 밤바다 속으로 비행기가 떨어지는 그 장면은 상상만으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