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평소 액션이나 스릴러, 판타지 쪽을 즐겨 보는 편인데, 그래서 이 영화는 제목만 보면 그냥 평범한 멜로 영화처럼 느껴졌었습니다. 그런데 TV에서 이 영화를 소개하는 장면을 우연히 보다가 "아, 이건 좀 다르구나" 싶어서 결국 비디오로 빌려 봤습니다. 단순히 제목과는 달리 참으로 재미있는 영화라 느꼈었습니다. 타임루프라는 장치가 단순하지 않은 이유이 영화의 핵심 설정은 타임루프(Time Loop)입니다. 타임루프란 주인공이 특정 시점으로 계속 되돌아가며 똑같은 하루를 무한 반복하는 서사 구조를 말합니다. 현재까지 많은 타임루프 영화가 나와 있지만, 사랑의 블랙홀은 이 장르의 원형(prototype)이라고 불릴 만큼 서사 문법을 처음으로 정립한 작품입니다.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먼저 느낀 건 반..
시나리오가 40번 넘게 퇴짜를 맞고, 주연 배우가 촬영 5주 만에 교체됐던 영화가 전 세계 3억 8,500만 달러를 벌어들였습니다. 저도 처음 이 사실을 알았을 때 잠깐 멍했습니다. 그냥 재미있는 SF 영화인 줄만 알았는데, 만들어지는 과정 자체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았으니까요.40번의 퇴짜, 그리고 전설의 시작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쓴 건 밥 게일이라는 작가입니다. 어느 날 부모님의 낡은 졸업 앨범을 뒤지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내가 아버지와 같은 학교에 다녔다면 우리는 친구가 될 수 있었을까. 그 엉뚱한 상상 하나가 시나리오가 됐는데, 현실은 가혹했습니다.디즈니는 "엄마와 아들이 묘한 감정을 갖는다는 게 말이 되냐"는 이유로 거절했고, 다른 제작사들은 반대로 "요즘 트렌드와 안 맞는 너무..
저는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그냥 울고 끝냈습니다. 엔딩 장면에서 눈물이 흘렀고, 그게 전부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다시 보고 나서야 깨달았습니다. 이 영화는 감동적인 척하면서 사실 인간을 가장 냉정하게 해부하는 작품이라는 것을. 스필버그의 AI, 개봉 당시에도 지금도 논란이 많은 이 영화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 제 경험을 바탕으로 풀어보겠습니다.이 영화가 낯설게 느껴진다면, 구조 때문입니다처음 AI를 보는 분들이 가장 당황하는 지점이 있습니다. 러닝타임이 약 2시간 20분인데, 50분쯤 지나면 이야기가 사실상 한 번 끝난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데이빗이 숲에 버려지는 장면이 끝나면, 이후 펼쳐지는 세계는 화법도, 공간도, 시각적 디자인도 완전히 달라집니다. 제가 처음 볼 때도 "이게 같은 영화..
영화를 고를 때 딱히 끌리는 게 없어서 그냥 틀어봤는데 생각보다 훨씬 재밌었던 경험, 한 번쯤은 있으실 겁니다. 저도 취업 전 어느 한가한 날, 딱히 볼 게 없어서 비디오로 틀었다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눈을 떼지 못한 영화가 있습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톰 행크스가 나온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볼 이유가 됐고, 실화 바탕이라는 사실이 호기심을 자극했습니다. 그게 바로 캐치 미 이프 유 캔이었습니다. 강박증이 말해주는 것, 프랭크의 불안저는 처음 이 영화를 볼 때 프랭크가 손톱을 뜯거나 껍데기를 뜯어내는 장면들을 그냥 습관 정도로 넘겼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장면들이 사실 영화의 핵심 심리를 담은 장치였습니다.프랭크가 보여주는 이 반복적인 행동들은 심리학에서 말하는 신체 반복 집..
멜로 영화를 잘 안 보는 분들도 한 번쯤은 '러브레터'라는 제목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저도 원래는 액션이나 스릴러 쪽을 주로 봤는데, 1999년 늦가을 말년 휴가 때 동생이 빌려온 비디오 하나가 그 고집을 완전히 깨버렸습니다. 이와이 슌지 감독의 1995년작 러브레터, 국내에서 일본 실사영화 최다 관람 기록을 지금도 보유 중인 바로 그 영화입니다.멜로인 줄 알았는데 왜 이렇게 몰입이 되나처음 비디오를 틀었을 때 솔직히 기대가 없었습니다. 그냥 일본 동네가 배경이고 등장인물도 평범해 보여서, 무난하게 흘려보내다 자려고 했거든요. 그런데 영화가 진행될수록 묘하게 화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러브레터의 핵심 서사 구조는 교차 편집(크로스 커팅)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교차 편집이란 서로 다른 시간대나 공..
지금까지 포레스트 검프를 보면서 제니를 불쌍한 여주인공이라고 생각했다면, 한 번쯤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와 수십 번 반복해서 본 뒤의 감상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1995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6개 부문을 석권한 이 영화는 볼수록 새로운 얼굴을 꺼내 보여주는 작품입니다.아카데미 6관왕, 그 영화를 처음 본 날포레스트 검프가 제6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포함해 감독상, 남우주연상, 각색상, 편집상, 시각효과상 등 6개 부문을 수상했을 때, 저는 고등학생이었습니다. 그 당시 아카데미 시상식은 우리나라에서도 제법 화제였는데, 저는 솔직히 '이 영화가 대체 얼마나 대단하길래'라는 반신반의의 마음으로 비디오가 나오기를 기다렸습니다.가족들과 함께 비디오로 처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