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딱 하나만 바꿀 수 있다면 어떨까 싶은 순간이 있지 않으신가요? 저는 요즘 그 생각이 부쩍 자주 떠오르는데, 마침 오래된 영화 한 편을 다시 꺼내 봤습니다. 2004년작 나비효과였습니다. 보고 나서 한동안 멍하니 있었는데, 단순한 시간여행 영화가 아니라는 걸 새삼 실감했습니다.과거집착이 만들어내는 악순환혹시 어릴 때 일이 자꾸 떠오르고, 그때만 달랐어도 하는 생각에 한참 빠져든 적 있으신가요? 영화 속 에반이 딱 그랬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 트라우마로 인해 기억의 공백이 생기고, 일기장을 통해 그 시절로 돌아가는 능력을 갖게 됩니다.여기서 눈에 띄는 건 에반의 동기입니다. 자기 이득을 위해 과거를 바꾼 게 아니었습니다. 사랑하는 캘리를 지키고 싶다는 마음, 레니와 토미가 덜 망가지기를 바라는 ..
2005년, 취업 준비로 머리가 터질 것 같던 시절이었습니다. 아는 동생과 함께 "이러다 둘 다 쓰러지겠다"며 반쯤 도망치듯 영화관으로 향했고, 그날 선택한 영화가 쿵푸허슬이었습니다. 솔직히 그때는 그게 그렇게 오래 기억에 남을 줄 몰랐습니다. 그냥 웃자고 들어간 영화였으니까요.답답한 일상 속에서 만난 돼지촌1980~90년대는 홍콩 영화의 전성기라 불리는 시절이었습니다. 주윤발, 장국영, 이연걸, 주성치, 양조위, 매염방, 유덕화 같은 배우들이 한 시대를 풍미했고, 당시 비디오 대여점은 사실상 홍콩 영화 천지였습니다. 그런데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홍콩 영화가 국내 영화관에 개봉하는 일 자체가 드물어졌고, 예전만 한 흥행을 기대하기도 어려워졌습니다. 저도 주성치 영화를 많이 접하지..
예상 밖이었습니다. 안 좋은 후기를 꽤 많이 보고 들어갔거든요. 특히 엔딩이 별로라는 말이 많아서 기대를 반쯤 접었는데, 막상 마지막 15분이 제일 마음에 남았습니다. 그리고 그 여운이 며칠째 가시질 않았습니다. 5년 만에 재개봉한 날씨의 아이, 다시 봐도 여전히 할 말이 많은 영화입니다.이 영화가 진짜 하고 싶었던 말처음 봤을 때 저도 스토리 개연성이 좀 약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로 보고 나서야 이 영화가 단순한 재난 로맨스가 아니라는 걸 체감했습니다. 불친절한 영화라 호불호가 갈리지만, 몇 장면이 자꾸 생각나서 다시 찾아보게 되는 그런 작품입니다.이 영화의 핵심은 공리주의(Utilitarianism) 비판에 있습니다. 공리주의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윤리관으로, 소수의 희생을 ..
예상 밖이었습니다. 일본에서 1,500만 명이 봤다는 소식을 듣고 그냥 유행 타는 애니겠지 싶어서 별 기대 없이 극장에 들어갔는데, 나오는 순간 "한 번 더 보고 싶다"는 말이 절로 나왔습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일곱 번째 장편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이 8년이 지난 지금도 왜 사랑받는지, 직접 겪어보니 그 이유가 분명히 있었습니다.눈이 성찬을 누리는 작화, 그 디테일의 세계제가 영화를 보면서 가장 먼저 압도된 건 스토리가 아니라 배경이었습니다. 도쿄의 빌딩숲 위로 쏟아지는 빛, 이토모리 마을 호수 위에서 반짝이는 햇살, 나뭇잎 사이로 새어드는 아침 햇빛. 이게 그린 그림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만화인데도 이게 사진인지 그림인지 헷갈릴 만큼 묘사가 정교합니다.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포토리..
시간여행 영화를 좋아한다고 말하면 주변에서 꼭 이 질문이 돌아옵니다. "그럼 백 투 더 퓨처는 봤어?" 저는 그때마다 이렇게 말합니다. "2편이 바이블입니다." 1편과 3편이 단순히 한 시대를 왕복하는 구조라면, 2편은 미래와 뒤틀린 현재와 과거를 종횡무진 오가는 이야기라 처음 봤을 때 머릿속이 한참 정리가 안 됐던 기억이 납니다. 그럼에도, 아니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가 저에게 최애로 남아 있습니다.팬도 놓치기 쉬운 설정 오류와 숨겨진 디테일영화를 처음 봤을 때부터 저는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혹시 같은 생각 해보신 적 있지 않으신가요? 마티가 1985년에서 2015년으로 곧장 점프했다면, 그 사이 30년 동안 이 우주에서 마티는 사실상 부재 상태입니다. 그런데 힐밸리에는 늙은 마..
스물몇 살짜리가 20분 안에 10만 마르크를 구해야 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1999년, 저는 극장 의자에 앉아서 진짜로 그 질문을 받았습니다. 톰 티크베어 감독의 롤라런은 단순한 액션 영화가 아니었습니다. 달리기 하나로 인생의 무게를 다루는, 당시로선 전혀 본 적 없는 방식의 영화였습니다.비선형 서사와 나비효과, 이 영화가 말하는 것롤라런의 구조를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개념이 비선형 서사(Non-linear Narrative)입니다. 비선형 서사란 이야기가 시간 순서대로 흐르지 않거나, 하나의 사건이 여러 결말로 분기되는 방식으로 전개되는 서술 구조를 말합니다. 롤라런은 이 구조를 20분이라는 시간 단위로 세 번 반복합니다. 같은 출발점에서 롤라가 내리는 선택이 조금씩 달라지고, 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