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너무 늦게 봤습니다. 1999년작 SF 스릴러 은 같은 해 개봉한 매트릭스에 완전히 묻혀버린 비운의 작품입니다. 하지만 직접 보고 나서 든 생각은 단 하나였습니다. "이게 왜 지금까지 이렇게 안 알려진 거지?" 가상현실 속에 또 다른 가상현실이 존재한다는 발상, 그것도 1999년에.1999년이라는 시대에 시뮬레이션을 상상했다는 것제가 처음 이 영화를 접했을 때 가장 먼저 든 감정은 경이로움이 아니라 당혹감이었습니다. 1999년이면 국내에서 광랜 인터넷이 막 보급되기 시작하던 시절입니다. 피처폰을 들고 다니던 사람들이 대다수였고, '가상현실'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하게 느껴지던 때였습니다. 그 시대에 이 영화는 중첩 시뮬레이션(nested simulation)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본 적이 언제였는지 떠올리면 대부분 머뭇거리게 됩니다. 저도 한동안 그랬습니다. 팀 버튼 감독의 영화 빅 피쉬는 바로 그 불편한 지점을 정면으로 건드립니다. 허풍처럼 들리는 아버지의 이야기 속에 진짜 사랑이 숨어 있다는 것, 이 영화를 보기 전엔 솔직히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몰랐습니다.아버지의 허풍, 어디서부터 믿어야 할까처음 영화를 틀었을 때 저는 아들 윌과 거의 같은 시선이었습니다. 에드워드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이 너무 황당해서, 진실과 과장을 구분하려고 계속 머릿속으로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마녀, 거인, 유령 마을, 유채꽃밭 프러포즈. 이게 다 사실이라고? 자연스럽게 의심부터 하게 됩니다.그런데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그 구분이 점점 의미 없어지는 순간이 옵니다. 제가..
30년 전 영화가 지금도 극장 재개봉을 하고 관객을 울립니다. 저는 처음 봤을 때보다 다시 봤을 때 더 많이 울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닐 페리의 침묵이 더 무겁게 느껴지는 이유, 그리고 이 영화가 지금 당신에게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풀어보겠습니다.웰튼 아카데미가 낯설지 않은 이유졸업생의 75%가 아이비리그에 진학하는 명문 웰튼 아카데미. 이 숫자 하나가 영화 전체의 공기를 설명합니다. 저도 처음엔 "미국 배경 이야기잖아"라고 거리를 뒀는데, 보다 보니 이건 완전히 지금 여기 이야기였습니다.영화 속 웰튼은 전통(Tradition), 명예(Honor), 규율(Discipline), 탁월함(Excellence)이라는 사훈을 내세우지만, 학생들은 이를 비틀어 "고통, 공포, 퇴폐, 배설"이라고 속삭입니다. 여..
이 영화 포스터를 처음 봤을 때 그냥 클래식 음악 영화겠거니 했습니다. 그런데 '울게하소서'가 흘러나오는 순간, 저도 모르게 멈춰버렸습니다. 목소리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는, 그 경계 어딘가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가 가슴을 먹먹하게 짓눌렀습니다. 1705년에 태어나 유럽을 흔들었던 카스트라토 파리넬리의 이야기, 음악과 윤리 사이에서 지금도 논쟁이 이어지는 주제입니다.카스트라토, 목소리를 위해 치른 대가카스트라토(Castrato)란 변성기 이전에 거세 수술을 받아 소년의 음역을 성인의 폐활량과 결합한 남성 성악가를 말합니다. 쉽게 말해 아이의 목소리와 어른의 몸이 합쳐진, 자연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소리를 만들어낸 존재입니다.파리넬리의 본명은 카를로 마리아 미켈란젤로 니콜라 브로스키로, 12살에 거세 ..
TV에서 이 영화에 대하여 알게 됐을 때 그냥 중산층 남자의 막장 코미디 정도로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저는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2000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포함해 5개 부문을 휩쓸었던 영화, 아메리칸 뷰티. 왜 이 영화가 그토록 오래 회자되는지, 보고 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됩니다.욕망이 충돌하는 평범한 가정의 해부레스터 번햄이라는 인물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아내에게 무시당하고, 딸에게 외면받고, 직장에서는 정리해고를 통보받는 남자. 그런데 그가 딸의 친구 앤젤라를 보는 순간, 무언가가 깨어납니다.이 영화가 탁월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레스터의 각성은 단순히 중년 남성의 일탈이 아니라, 오랫동안 억눌려온 자아가 폭발하는 순간으로 그려집니다..
살리에리가 악당이라고 생각하셨나요? 어릴 때 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 나서 다시 이 영화를 보니, 어쩐지 살리에리가 미워지지 않더군요. 오히려 그 마음이 너무 이해가 됐습니다. 1984년 작품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영상미와 음악, 그리고 두 인물의 이야기가 지금도 이렇게 가슴을 치는 이유가 있습니다.살리에리, 그리고 평생 지워지지 않는 그늘아마데우스(Amadeus)라는 제목은 모차르트의 미들 네임에서 왔습니다. 라틴어로 '신에게 사랑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이상하게도, 제목이 모차르트가 아니라 살리에리를 위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신에게 사랑받지 못한 사람이 신에게 사랑받은 자를 평생 증오하고 또 경모했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영화는 노년의 살리에리가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