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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넬리 (카스트라토, 울게하소서, 바로크 오페라)

이 영화 포스터를 처음 봤을 때 그냥 클래식 음악 영화겠거니 했습니다. 그런데 '울게하소서'가 흘러나오는 순간, 저도 모르게 멈춰버렸습니다. 목소리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는, 그 경계 어딘가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가 가슴을 먹먹하게 짓눌렀습니다. 1705년에 태어나 유럽을 흔들었던 카스트라토 파리넬리의 이야기, 음악과 윤리 사이에서 지금도 논쟁이 이어지는 주제입니다.카스트라토, 목소리를 위해 치른 대가카스트라토(Castrato)란 변성기 이전에 거세 수술을 받아 소년의 음역을 성인의 폐활량과 결합한 남성 성악가를 말합니다. 쉽게 말해 아이의 목소리와 어른의 몸이 합쳐진, 자연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소리를 만들어낸 존재입니다.파리넬리의 본명은 카를로 마리아 미켈란젤로 니콜라 브로스키로, 12살에 거세 ..

영화 리뷰 2026. 6. 28. 20:04
아메리칸 뷰티 (욕망, 각성, 아름다움)

TV에서 이 영화에 대하여 알게 됐을 때 그냥 중산층 남자의 막장 코미디 정도로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저는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2000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포함해 5개 부문을 휩쓸었던 영화, 아메리칸 뷰티. 왜 이 영화가 그토록 오래 회자되는지, 보고 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됩니다.욕망이 충돌하는 평범한 가정의 해부레스터 번햄이라는 인물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아내에게 무시당하고, 딸에게 외면받고, 직장에서는 정리해고를 통보받는 남자. 그런데 그가 딸의 친구 앤젤라를 보는 순간, 무언가가 깨어납니다.이 영화가 탁월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레스터의 각성은 단순히 중년 남성의 일탈이 아니라, 오랫동안 억눌려온 자아가 폭발하는 순간으로 그려집니다..

영화 리뷰 2026. 6. 24. 09:27
아마데우스 (살리에리, 모차르트, 질투)

살리에리가 악당이라고 생각하셨나요? 어릴 때 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 나서 다시 이 영화를 보니, 어쩐지 살리에리가 미워지지 않더군요. 오히려 그 마음이 너무 이해가 됐습니다. 1984년 작품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영상미와 음악, 그리고 두 인물의 이야기가 지금도 이렇게 가슴을 치는 이유가 있습니다.살리에리, 그리고 평생 지워지지 않는 그늘아마데우스(Amadeus)라는 제목은 모차르트의 미들 네임에서 왔습니다. 라틴어로 '신에게 사랑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이상하게도, 제목이 모차르트가 아니라 살리에리를 위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신에게 사랑받지 못한 사람이 신에게 사랑받은 자를 평생 증오하고 또 경모했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영화는 노년의 살리에리가 정..

영화 리뷰 2026. 6. 23. 09:58
가타카 리뷰 (우생학, 유전자 차별, 의지)

이 영화에 대해서 저는 거대한 SF 스펙터클을 기대했습니다. 우주선이 폭발하고 외계인이 등장하는 그런 류의 영화 말입니다. 그런데 스크린에 펼쳐진 건 조용하고 절제된 한 남자의 이야기였습니다. 1997년 작 가타카, 지금 다시 봐도 촌스러움이 없는 이 영화가 왜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야 더 깊이 와닿는 건지, 그 이유가 궁금해지지 않으십니까.우생학이라는 불편한 역사, 그리고 가타카의 세계가타카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우생학(Eugenics)의 역사를 잠깐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여기서 우생학이란 인간의 유전적 형질을 개량하여 우수한 자손을 늘리고 열등한 자손을 줄이려는 사상으로, 19세기 후반 프랜시스 골턴이 처음 체계화한 개념입니다. 들으면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제 역사에서 이 사상이 어떤 참극을 낳았는..

영화 리뷰 2026. 6. 22. 11:38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 (시나리오, 앙상블, 가이 리치)

이 영화를 처음 틀었을 때 30분 만에 끄려다 참았습니다. 등장인물이 쏟아지는데 누가 누군지도 모르겠고, 뭔가 B급 냄새가 진하게 났거든요. 그런데 그 30분을 버텼더니, 나머지 90분이 보상처럼 펼쳐졌습니다. 가이 리치가 데뷔작에서 이미 완성된 스타일을 들고 나온 영화, 1998년작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입니다.시나리오 구조 — 퍼즐처럼 맞춰지는 앙상블의 힘이 영화의 핵심은 앙상블 캐스팅(ensemble casting)에 있습니다. 여기서 앙상블 캐스팅이란 주인공 한 명이 아니라 여러 인물군이 각자의 독립된 이야기를 끌고 가다가 후반부에 하나로 수렴하는 구조를 뜻합니다. 에디·톰·베이컨·소프 네 명을 중심으로, 갱단 두목 해리, 마리화나 농장주 롤리 브레이커, 멍청한 콤비 딘과 게리, 장물아비 ..

영화 리뷰 2026. 6. 16. 10:49
바닐라 스카이 (꿈과 현실, 자각몽, 선택)

이 영화를 가볍게 보다가 중반부터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톰 크루즈, 페넬로페 크루즈, 카메론 디아즈가 한 화면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볼 이유가 충분한데, 정작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그보다 훨씬 묵직했습니다. 꿈과 현실의 경계, 그리고 그 사이에서 인간이 어떤 선택을 하는가. 영화 한 편이 이렇게 오래 머릿속에 남을 줄은 몰랐습니다.꿈과 현실, 어디서부터 무너지는가영화는 처음부터 심상치 않습니다. 주인공 데이빗이 살인죄로 수감된 채 정신과 의사와 면담을 나누는 장면으로 시작하거든요. 얼굴에는 가면을 쓰고 있고, 의사는 그의 과거를 끌어내려 합니다. 저는 이 오프닝 나레이션을 듣는 순간부터 뭔가 예사롭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지금도 그 OST가 가끔 생각날 정도니까요.데이빗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

영화 리뷰 2026. 6. 9.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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