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무슨 영화인가 싶었습니다. 시간이 앞뒤로 뒤섞이고, 주인공이 동시에 여러 인생을 사는데 어느 게 진짜인지 도무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로 다시 틀었을 때, 영화 전체가 완전히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2009년 작 는 평행우주와 선택이라는 개념을 판타지 문법으로 풀어낸 벨기에 영화로, 보고 나면 한동안 자기 인생의 갈림길들이 머릿속에 겹쳐 보입니다.배경: 이 영화가 어디서 출발했는지감독은 벨기에 출신의 자코 반 도르마엘입니다. 예전에 그가 연출한 작품을 접했을 때부터 '이 사람은 뭔가 다르다'는 인상이 있었는데, 를 보고 나서 그 느낌이 확신으로 바뀌었습니다. 뮤직비디오처럼 현란한 편집, 클로즈업 위주의 촬영, 그리고 화면 하나하나에 의도를 심어놓는 방식이 유럽 감성과 할리우..
불륜을 미화한 영화라는 말, 맞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처음으로 "연애가 아니라 사랑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2004년 개봉한 영화 은 치매에 걸린 앨리에게 남편 노아가 직접 일기를 읽어주는 현재와, 두 사람의 불같은 과거를 교차해 보여주는 구조입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니콜라스 스파크스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 한 번 더 놀랐습니다.첫사랑 심리 — 왜 우리는 잊지 못하는가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이유를 묻는다면, 심리학에서는 초두 효과(Primacy Effect)를 꺼내 듭니다. 여기서 초두 효과란 처음 경험한 자극이 이후 경험보다 더 강하게 기억에 각인되는 인지 편향을 말합니다. 첫사랑이 유독 선명하게 남는 것은 감정의 질이 특별해서가 아..
1994년 개봉한 《덤앤더머》는 북미 박스오피스에서 2억 4,700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그해 코미디 장르 1위를 기록했습니다. 처음 이 숫자를 봤을 때 솔직히 좀 의아했습니다. 그냥 바보 둘이 가방 들고 미국 횡단하는 영화 아닌가 싶었는데, 막상 보고 나서는 이게 왜 30년 넘게 회자되는지 납득이 됐습니다.줄거리와 구조: 바보 로드무비가 스릴러를 품은 방식영화는 로이드 크리스마스(짐 캐리)와 해리 더네(제프 다니엘스)라는 두 루저가 콜로라도주 아스펜까지 가방 하나를 전달하려고 떠나는 여정을 담습니다. 단순해 보이는 이 설정이 사실은 꽤 정교하게 짜여 있습니다.핵심은 맥거핀(MacGuffin)입니다. 맥거핀이란 서사를 이끄는 소품이나 목표물이지만, 그 자체보다 그것을 쫓는 인물들의 행동이 진짜 이야기가 되..
착하게만 살면 결국 이긴다고 배웠는데, 정말 그럴까요? 짐 캐리 주연의 2000년작 을 다시 꺼내 보다가 이 물음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았습니다. 20년 넘게 참고 또 참던 순경 찰리가 어느 날 전혀 다른 인격 행크를 탄생시키는 이 영화, 제가 직접 봤을 때 느낀 건 단순한 코미디 그 이상이었습니다.짐 캐리의 이중인격 연기, 그냥 웃자고 만든 영화가 아니었다처음 볼 때는 그냥 짐 캐리 얼굴 보러 틀었습니다. 덤앤더머, 에이스 벤츄라 다 챙겨봤을 정도로 짐 캐리 오버액션을 좋아하는 편이라 기대치가 이미 높았거든요. 그런데 막상 보고 나니 웃음 뒤에 꽤 무거운 게 남더라고요.영화 속 주인공 찰리는 로드아일랜드 경찰로, 원래 자수성가해서 경찰서의 절반이 결혼식에 참석할 만큼 인망이 두터운 인물입니다. 그런데 아..
어떤 영화는 두 번째로 볼 때 완전히 다른 영화가 됩니다. 20대에 처음 봤을 때 화양연화는 그냥 미적지근한 사랑 이야기였습니다. 대사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왜 이 둘이 그냥 같이 도망가지 않는지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작년에 특별판 개봉 소식을 듣고 극장에 다시 앉았을 때, 저는 처음 보는 영화를 보고 있었습니다. 죄책감과 수치심, 연민과 사랑이 어떻게 한 얼굴을 가질 수 있는지, 이번에는 모든 대사가 이해됐습니다.미장센이 말을 대신한다 — 공간과 색채의 언어왕가위 감독의 연출 방식 중 가장 먼저 체감되는 것은 미장센(mise-en-scène)입니다. 미장센이란 화면 안에 배치되는 모든 시각 요소, 즉 공간, 조명, 색채, 배우의 동선까지 포함하는 개념으로, 대사 없이도 인물의 내면을 전달..
명절에 TV를 켜면 꼭 한 번씩 마주쳤던 영화가 있습니다. 채널을 돌리다가 딱 걸렸는데, 결국 끝까지 보고 나서야 리모컨을 내려놓게 되는 그런 영화. 저도 처음엔 그렇게 아마겟돈(1998)을 봤습니다. 브루스 윌리스가 못생기고 머리도 벗겨졌는데 왜 이렇게 인기가 많은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됐는데, 이 영화 한 편으로 팬이 됐습니다. 지금도 틀면 앉은 자리에서 시간이 순삭되는, 그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이 글에서 직접 뜯어봤습니다.마이클 베이와 세기말 공포 — 이 영화가 터진 이유일반적으로 아마겟돈을 그냥 "폭발 많은 블록버스터"로 알고 있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이 영화를 다시 봤을 때 당시 시대 분위기를 빼고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걸 느꼈습니다.1990년대 말, 프랑스의 예언가 노스트라다무스(N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