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V에서 이 영화에 대하여 알게 됐을 때 그냥 중산층 남자의 막장 코미디 정도로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저는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2000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포함해 5개 부문을 휩쓸었던 영화, 아메리칸 뷰티. 왜 이 영화가 그토록 오래 회자되는지, 보고 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됩니다.
욕망이 충돌하는 평범한 가정의 해부
레스터 번햄이라는 인물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아내에게 무시당하고, 딸에게 외면받고, 직장에서는 정리해고를 통보받는 남자. 그런데 그가 딸의 친구 앤젤라를 보는 순간, 무언가가 깨어납니다.
이 영화가 탁월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레스터의 각성은 단순히 중년 남성의 일탈이 아니라, 오랫동안 억눌려온 자아가 폭발하는 순간으로 그려집니다. 영화 용어로 말하면 캐릭터 아크(Character Arc), 즉 인물이 이야기를 통해 내면적으로 변화해가는 궤적이 이 영화만큼 선명하게 그려진 작품을 저는 많이 보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캐릭터 아크란 주인공이 처음과 끝에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가는 내면의 여정을 의미합니다.
레스터만이 아닙니다. 아내 캐롤린은 최고의 부동산 중개인이 되겠다는 집착 속에 살고, 딸 제인은 사랑받고 싶다는 욕구를 무관심으로 포장합니다. 앤젤라는 모두의 시선을 받는 스타가 되고 싶어하고, 옆집 아들 리키는 세상을 카메라 렌즈 너머로 관찰하며 스스로를 지킵니다. 등장인물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뭔가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그 갈망들이 하나의 공간 안에서 충돌할 때, 이 영화는 가장 빛납니다.
각성, 자유로워 보이지만 실은 추락
레스터가 직장 상사에게 당당히 맞서고, 패스트푸드점에 취업하고, 운동을 시작하는 장면들. 처음 볼 때는 통쾌하게 느껴집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맞아, 저렇게 살아야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이 영화의 교묘한 점은 그 자유처럼 보이는 행동들이 사실 또 다른 집착의 형태라는 것을 서서히 보여준다는 겁니다. 레스터는 앤젤라라는 환상에 매달리며 운동하고, 분노를 에너지로 삼아 살아가기 시작합니다. 영화 비평 용어로는 이를 서사적 아이러니(Dramatic Irony)라고 합니다. 서사적 아이러니란 관객은 인물의 행동이 결국 어디로 향할지 느끼고 있지만, 정작 인물 본인은 그것을 모르는 상태에서 진행되는 이야기 구조를 뜻합니다.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앤젤라와의 관계가 실현 직전, 앤젤라가 처음이라고 말하는 순간입니다. 레스터가 멈춥니다. 그 순간, 그가 그토록 쫓아온 것이 실체 없는 환상이었음을 스스로 인정하게 되죠. 욕망을 끝까지 밀어붙인 끝에서야, 욕망이 자신을 채워줄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역설. 이걸 이렇게 자연스럽게 풀어내다니, 솔직히 경탄했습니다.
아름다움, 비닐봉지가 가르쳐 준 것
이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 중 하나가 리키가 촬영한 비닐봉지 영상입니다. 바람에 이리저리 흩날리는 비닐봉지를 리키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합니다. 처음 이 장면을 봤을 때 저는 솔직히 좀 과하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런데 영화 전체를 다 보고 난 뒤, 그 장면이 다시 떠올랐을 때는 달랐습니다.
미학(Aesthetics)의 관점에서 보면, 이 영화는 아름다움이란 특별하거나 고귀한 대상에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명제를 끝까지 밀고 갑니다. 여기서 미학이란 무엇이 아름다운가, 우리는 어떻게 아름다움을 지각하는가를 탐구하는 철학의 한 분야입니다. 리키는 죽은 새, 떨어지는 눈, 그리고 비닐봉지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합니다. 정작 사회적 기준에서 '정상'으로 분류되는 인물들은 그 아름다움을 전혀 보지 못하면서요.
아는 만큼 보이고, 이해한 만큼 마음에 남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영화가 딱 그런 작품입니다. 제가 처음 봤을 때는 미나 수바리의 외모만 눈에 들어왔는데, 두 번째 볼 때는 케빈 스페이시의 눈빛이 보였고, 세 번째에는 토라 버치가 말하지 않는 장면에서 더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볼 때마다 다른 인물이 보인다는 것. 이게 걸작의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가 전달하는 핵심 메시지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욕망을 쫓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욕망을 집착으로 바꾸는 순간이 문제다
- 아름다움은 찾으러 가는 것이 아니라, 시선을 바꾸면 이미 거기에 있다
- 가족의 소중함은 대개 잃고 나서야, 혹은 잃기 직전에야 보인다
레스터의 마지막 독백이 오래 남는 이유
영화의 마지막, 죽음의 직전 레스터가 하는 독백은 영화사에서도 손꼽히는 명대사로 평가받습니다. "분노할 수도 있었지만, 세상에 이토록 아름다운 것들이 넘쳐나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는 대사. 저는 이 장면에서 처음 영화를 본 날 꺼억꺼억 울었습니다. 지금도 볼 때마다 눈물이 납니다.
내러티브 구조(Narrative Structure)의 측면에서 보면, 이 독백은 영화 전체의 주제의식을 압축한 장치입니다. 내러티브 구조란 이야기가 시작부터 끝까지 어떤 순서와 방식으로 전달되는지를 뜻하며, 아메리칸 뷰티는 죽은 자의 독백으로 시작해 죽음으로 끝나는 액자식 구성을 택했습니다. 이 선택 덕분에 관객은 처음부터 레스터의 죽음을 알면서도, 그의 삶 전체를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제가 이 영화를 너무 이른 나이에 봤다는 게 가장 아쉽습니다. 어릴 때는 그냥 이상한 어른들 이야기였는데, 나이가 들수록 등장인물 하나하나의 사정이 이해가 됩니다. 매너리즘에 빠진 레스터가 이해되고, 인정받고 싶어 바깥으로 달려나간 캐롤린이 이해되고, 아버지의 폭력 안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만든 리키가 이해됩니다. 아메리칸 뷰티는 세월이 흐를수록 더 빛을 발하는 영화입니다. 이런 게 걸작 아닐까요.
영화의 주제와 관련해, 심리학에서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욕구가 부적절한 방식으로 외화된다'는 개념을 억압(Repression)이라고 설명합니다(출처: 미국심리학회(APA)). 레스터, 프랭크, 캐롤린 모두 각자 억압된 무언가를 가지고 있었고, 그것이 결국 파국을 만들었습니다. 영화 한 편이 이걸 그렇게 정확하게 그려낼 수 있다는 게 놀랍습니다.
또한 아메리칸 뷰티는 1999년 제작 당시 샘 멘데스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었음에도, 당해 아카데미에서 작품상·감독상·남우주연상 등을 수상했습니다(출처: 아카데미 공식 사이트). 데뷔작으로 이런 성취를 이룬 사례가 매우 드문 만큼, 이 영화의 완성도가 얼마나 예외적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삶이 지루하게 느껴지는 날, 혹은 내가 원하는 게 뭔지 모르겠다는 날, 아메리칸 뷰티를 한 번 꺼내보시길 권합니다. 처음 봤을 때 이해하지 못했다면 다시 보셔도 좋습니다. 저처럼 볼 때마다 다른 장면에서 멈추게 될 겁니다. 분노를 품지 말 것. 세상에는 아름다운 것이 훨씬 많으니까. 레스터가 죽는 순간에야 깨달은 그것을, 우리는 살아있는 동안 먼저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