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영화 포스터를 처음 봤을 때 그냥 클래식 음악 영화겠거니 했습니다. 그런데 '울게하소서'가 흘러나오는 순간, 저도 모르게 멈춰버렸습니다. 목소리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는, 그 경계 어딘가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가 가슴을 먹먹하게 짓눌렀습니다. 1705년에 태어나 유럽을 흔들었던 카스트라토 파리넬리의 이야기, 음악과 윤리 사이에서 지금도 논쟁이 이어지는 주제입니다.
카스트라토, 목소리를 위해 치른 대가
카스트라토(Castrato)란 변성기 이전에 거세 수술을 받아 소년의 음역을 성인의 폐활량과 결합한 남성 성악가를 말합니다. 쉽게 말해 아이의 목소리와 어른의 몸이 합쳐진, 자연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소리를 만들어낸 존재입니다.
파리넬리의 본명은 카를로 마리아 미켈란젤로 니콜라 브로스키로, 12살에 거세 수술을 받았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수술을 결정한 건 그의 형 리카르도 브로스키가 아니라 아버지였고, 아버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습니다. 영화에서처럼 형이 동생을 거세했다는 설정은 극적인 연출을 위한 각색입니다. 저는 이 부분을 알고 나서 영화를 다시 봤을 때, 형에 대한 감정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형을 원망하기 쉬운 구도로 그려진 것이 영화의 한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8세기 이탈리아에서는 한 해 4,000명에서 6,000명에 달하는 소년들이 거세를 받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중 파리넬리처럼 성공에 이른 이들은 극소수였고, 대부분은 성 불구자로 살거나 스스로 삶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예술의 이름 아래 이루어진 이 관행은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비윤리적이라는 말로도 부족합니다. '카스트라토를 만들어낸 시대의 추악함'이라고 표현하는 분들의 말이 과하지 않은 이유입니다.
바로크 오페라와 카스트라토가 공존한 이유
17~18세기 유럽은 바로크 양식(Baroque Style)의 전성기였습니다. 바로크 양식이란 절대 왕정 시대를 배경으로 화려함과 장식성을 극도로 추구한 예술 사조로, 귀족과 왕족을 위한 사치스럽고 웅장한 표현이 특징입니다.
이 시대의 오페라 주인공은 신화 속 신이나 영웅, 혹은 왕이었습니다. 그러니 목소리부터 범상치 않아야 했습니다. 평범한 테너나 바리톤으로는 채울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넘은 듯한 음역이 필요했고, 카스트라토가 그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파리넬리는 3옥타브 반을 완벽하게 오르내릴 수 있었고, 트릴(Trill)이라 불리는 두 음을 빠르게 교차하는 장식 기법도 구사했다고 전해집니다. 트릴이란 성악이나 기악에서 인접한 두 음을 빠르게 번갈아 내는 화려한 장식음으로, 당시 카스트라토의 기교를 상징하는 기법이었습니다.
카스트라토가 단순히 타고난 재능만으로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라는 점도 중요합니다. 거세로 인해 남성 호르몬이 차단되면 성대의 두께 변화가 억제되어 소년의 고음역이 유지됩니다. 동시에 성인 남성의 흉강과 폐활량을 갖추게 되어 일반 소프라노가 낼 수 없는 강도와 지속력이 생깁니다. 인간 신체를 이용한 일종의 음향 실험이었던 셈인데, 그 결과가 음악사에서 전무후무한 목소리로 남은 것입니다.
카스트라토가 성행했던 시기와 쇠퇴한 배경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비잔티움 제국 시기 환관 성가대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으며, 16세기 이탈리아에서 본격적으로 확산되었습니다.
- 17~18세기 바로크 오페라 전성기에 절정에 달했고, 파리넬리·세네지노·카파렐리 등이 대표적인 인물로 꼽힙니다.
- 18세기 중반 이후 고전주의 시대로 전환되며 시민 계급이 성장하고, 일상을 다루는 소박한 오페라가 인기를 얻으면서 자리를 잃기 시작했습니다.
- 프랑스 혁명 이후 나폴레옹이 비인도주의적이라 규정하고, 교황청이 공식 금지하면서 역사에서 사라졌습니다.
헨델과 파리넬리, 라이벌인가 동지인가
영화 속 헨델(George Frideric Handel)과 파리넬리의 관계는 적대적으로 묘사됩니다. 그리고 이 부분은 역사적 사실과 맞닿아 있는 부분도 있습니다. 파리넬리가 1734년 런던에 왔을 때, 헨델은 이미 또 다른 카스트라토인 세네지노를 자신의 극장에 두고 있었습니다. 파리넬리와 세네지노의 라이벌 구도가 형성될 수밖에 없었고, 헨델이 파리넬리를 '노래하는 기계'라 불렀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제가 직접 이 대목을 확인하고 나서 영화를 다시 보니, 오히려 헨델을 향한 감정이 복잡해졌습니다. 당대 최고의 작곡가가 최고의 성악가를 마주했을 때의 긴장감, 그리고 그 속에서 파리넬리가 '울게하소서(Lascia ch'io pianga)'를 부르는 장면은 두 번째 볼 때 더 전율이 왔습니다. 저는 이 장면을 처음 봤을 때보다 두 번째가 훨씬 더 울었습니다.
'울게하소서'는 원래 헨델의 오페라 '리날도(Rinaldo)'에 수록된 아리아(Aria)입니다. 아리아란 오페라에서 독창자가 감정을 집중적으로 표현하는 독창 부분으로, 오페라의 극적 클라이맥스를 담당하는 음악 형식입니다. 영화에서는 파리넬리가 이 곡을 부르는 장면이 없었다는 주장도 있는데, 다큐멘터리가 아닌 극영화니만큼 이런 각색은 감수해야 한다고 봅니다. 오히려 그 선택 덕분에 '울게하소서'가 지금처럼 많이 알려질 수 있었다는 점에서는 감독에게 공이 있습니다.
한 가지 더 짚고 싶은 건, 영화에서 형 리카르도 브로스키가 형편없는 작곡가로 묘사된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그는 파리넬리보다 일곱 살 위의 작곡가였고, 당시 이미 이름이 알려진 인물이었으며 파리넬리를 위한 곡을 여러 편 남겼습니다. 형에 대한 일방적인 각색이 영화의 결정적인 아쉬움 중 하나입니다.
최후의 카스트라토와 영화의 목소리
역사상 마지막 카스트라토로 공인된 인물은 알레산드로 모레스키(Alessandro Moreschi)입니다. 그는 1858년에 태어나 1922년에 사망했으며, 유일하게 독창 음반을 남긴 카스트라토입니다. 소년기에 서혜부 탈장 치료를 위해 거세를 받았고, 이후 성악을 배워 시스틴 성당(Sistine Chapel) 성가대에서 활동하며 '로마의 천사'라 불렸습니다. 1902년 교황의 허가를 받아 녹음된 음반이 현재까지 전해집니다(출처: Encyclopaedia Britannica).
영화 속 파리넬리의 목소리는 실제로 테너 데렉 리 레이진(Derek Lee Ragin)과 소프라노 에바 말라스-고들레프스카(Ewa Mallas-Godlewska)의 목소리를 디지털 합성 기술로 혼합해 만들었습니다. 이는 당시로서는 상당히 실험적인 시도였습니다. 저는 이 합성 목소리가 실제 카스트라토의 소리에 얼마나 가까운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그 경계를 허무는 느낌만큼은 완벽하게 구현했다고 생각합니다.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덧붙이자면, 카스트라토처럼 사춘기 이전에 거세를 한 경우 남성 호르몬 분비가 억제되어 탈모 유전자가 있더라도 탈모가 발현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미국의 해부학자 해밀턴이 1942년 발표한 연구에서 이를 확인했으며, 반대로 남성 호르몬을 투여하면 탈모가 재개된다는 것도 밝혀냈습니다(출처: National Library of Medicine). 파리넬리는 아마 생의 마지막까지 풍성한 머리카락을 유지했을 것입니다.
카운터테너(Countertenor)는 오늘날 카스트라토를 대신하는 음역입니다. 카운터테너란 거세 없이 두성(팔세토)을 활용해 소프라노나 알토 음역을 소화하는 남성 성악가를 말합니다. 카스트라토를 위해 만들어진 곡들이 현재는 주로 카운터테너들에 의해 불리고 있는 이유입니다.
파리넬리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결국 두 가지 감정이 동시에 남습니다. 그 시대가 만들어낸 음악의 황홀함과, 그 음악을 위해 치른 대가에 대한 불편함입니다. 어느 쪽도 외면하기 어렵고, 그래서 이 영화가 단순한 감동 이상으로 오래 남는 것 같습니다. '울게하소서'를 한 번이라도 들어보신 적 없다면, 영화를 보기 전에 먼저 그 곡을 들어보시길 권합니다. 아마 자연스럽게 영화로 이어지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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