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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의 향기 (알파치노, 탱고씬, 청문회)

여자랑 춤추는 로맨스 영화인 줄 알고 30년 넘게 외면했습니다. 제가 이 영화를 처음 틀었을 때, 예상 밖이었습니다. 제목과 포스터만 보고 지레 선을 그었던 스스로가 어이없을 정도였으니까요. 1992년작 여인의 향기는 알파치노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단순한 드라마가 아니라 인간의 양심과 삶의 의미를 정면으로 다룬 영화입니다.알파치노와 탱고씬, 눈 없이도 보이는 연기이 영화를 두고 "알파치노가 잘 연기했다"는 표현은 너무 약합니다. 제가 직접 봤는데, 그는 연기를 한 게 아니라 퇴역 장교 프랭크 슬레이드 그 자체였습니다. 알파치노는 촬영 전 실제 시각장애인들과 함께 생활하며 맹인 연기를 준비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 흔적이 화면 한 컷 한 컷에 그대로 녹아 있습니다.영화에서 가장 많이 회..

영화 리뷰 2026. 6. 2. 09:11
레트로 액티브 (타임루프, 여주인공, B급영화)

이 영화에 대하여 처음에는 TV에서 영화소개를 통하여 알게 되었는데, 1997년작 저예산 타임루프 스릴러 영화라 살짝 기대는 했었습니다. 그리고 군 복무 시절 휴가를 나와 집에서 비디오를 빌려 레트로 액티브를 봤었는데 정말 재미있게 봤었습니다. 그리고 나비효과보다 7년 앞서 같은 소재를 다룬 영화라는 걸 알고 나서는 더 흥미롭게 느껴지는 영화였습니다.타임루프 장르의 원형을 보여준 영화레트로 액티브는 타임루프(time loop) 구조를 핵심 서사 장치로 사용한 영화입니다. 여기서 타임루프란 특정 시점으로 반복해서 되돌아가는 설정을 의미하는데, 현재는 엣지 오브 투모로우, 나비효과, 하루 같은 작품들 덕분에 널리 알려진 SF 서사 공식입니다. 그런데 레트로 액티브는 그 공식이 정착되기도 전인 1997년에 ..

영화 리뷰 2026. 6. 1. 11:35
나비효과 (과거집착, 트라우마, 현재수용)

살다 보면 딱 하나만 바꿀 수 있다면 어떨까 싶은 순간이 있지 않으신가요? 저는 요즘 그 생각이 부쩍 자주 떠오르는데, 마침 오래된 영화 한 편을 다시 꺼내 봤습니다. 2004년작 나비효과였습니다. 보고 나서 한동안 멍하니 있었는데, 단순한 시간여행 영화가 아니라는 걸 새삼 실감했습니다.과거집착이 만들어내는 악순환혹시 어릴 때 일이 자꾸 떠오르고, 그때만 달랐어도 하는 생각에 한참 빠져든 적 있으신가요? 영화 속 에반이 딱 그랬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 트라우마로 인해 기억의 공백이 생기고, 일기장을 통해 그 시절로 돌아가는 능력을 갖게 됩니다.여기서 눈에 띄는 건 에반의 동기입니다. 자기 이득을 위해 과거를 바꾼 게 아니었습니다. 사랑하는 캘리를 지키고 싶다는 마음, 레니와 토미가 덜 망가지기를 바라는 ..

영화 리뷰 2026. 5. 30. 23:04
쿵푸허슬 (취업준비, 홍콩영화, 주성치)

2005년, 취업 준비로 머리가 터질 것 같던 시절이었습니다. 아는 동생과 함께 "이러다 둘 다 쓰러지겠다"며 반쯤 도망치듯 영화관으로 향했고, 그날 선택한 영화가 쿵푸허슬이었습니다. 솔직히 그때는 그게 그렇게 오래 기억에 남을 줄 몰랐습니다. 그냥 웃자고 들어간 영화였으니까요.답답한 일상 속에서 만난 돼지촌1980~90년대는 홍콩 영화의 전성기라 불리는 시절이었습니다. 주윤발, 장국영, 이연걸, 주성치, 양조위, 매염방, 유덕화 같은 배우들이 한 시대를 풍미했고, 당시 비디오 대여점은 사실상 홍콩 영화 천지였습니다. 그런데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홍콩 영화가 국내 영화관에 개봉하는 일 자체가 드물어졌고, 예전만 한 흥행을 기대하기도 어려워졌습니다. 저도 주성치 영화를 많이 접하지..

영화 리뷰 2026. 5. 29. 09:47
날씨의 아이 리뷰 (사회비판, 연출, 메시지)

예상 밖이었습니다. 안 좋은 후기를 꽤 많이 보고 들어갔거든요. 특히 엔딩이 별로라는 말이 많아서 기대를 반쯤 접었는데, 막상 마지막 15분이 제일 마음에 남았습니다. 그리고 그 여운이 며칠째 가시질 않았습니다. 5년 만에 재개봉한 날씨의 아이, 다시 봐도 여전히 할 말이 많은 영화입니다.이 영화가 진짜 하고 싶었던 말처음 봤을 때 저도 스토리 개연성이 좀 약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로 보고 나서야 이 영화가 단순한 재난 로맨스가 아니라는 걸 체감했습니다. 불친절한 영화라 호불호가 갈리지만, 몇 장면이 자꾸 생각나서 다시 찾아보게 되는 그런 작품입니다.이 영화의 핵심은 공리주의(Utilitarianism) 비판에 있습니다. 공리주의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윤리관으로, 소수의 희생을 ..

영화 리뷰 2026. 5. 28. 09:13
너의 이름은 (작화, 무스비, OST)

예상 밖이었습니다. 일본에서 1,500만 명이 봤다는 소식을 듣고 그냥 유행 타는 애니겠지 싶어서 별 기대 없이 극장에 들어갔는데, 나오는 순간 "한 번 더 보고 싶다"는 말이 절로 나왔습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일곱 번째 장편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이 8년이 지난 지금도 왜 사랑받는지, 직접 겪어보니 그 이유가 분명히 있었습니다.눈이 성찬을 누리는 작화, 그 디테일의 세계제가 영화를 보면서 가장 먼저 압도된 건 스토리가 아니라 배경이었습니다. 도쿄의 빌딩숲 위로 쏟아지는 빛, 이토모리 마을 호수 위에서 반짝이는 햇살, 나뭇잎 사이로 새어드는 아침 햇빛. 이게 그린 그림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만화인데도 이게 사진인지 그림인지 헷갈릴 만큼 묘사가 정교합니다.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포토리..

영화 리뷰 2026. 5. 27.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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