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억을 지우면 사랑도 사라질까요. 이 질문에 선뜻 그렇다고 답하기가 어렵습니다. 이터널 선샤인을 처음 봤을 때 저도 막연히 그럴 것이라 생각했는데, 영화가 끝나고 나서 한동안 멍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지워도 다시 끌리는 두 사람을 보면서, 사랑이 기억에 있는 게 아니라 몸과 습관 어딘가에 새겨지는 것이 아닐까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했습니다.
비선형 서사가 처음엔 낯설었습니다
이터널 선샤인의 이야기 구조는 선형 서사와 정반대입니다. 선형 서사란 시간 순서대로 사건이 전개되는 방식인데, 이 영화는 그 반대로 현재와 기억 삭제의 역순이 동시에 뒤섞여 흐릅니다. 처음 보는 분들 중에는 무슨 이야기인지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고 하시는데, 저도 첫 관람에서 타임라인을 완전히 놓쳤습니다.
영화는 사실상 2월 13일부터 2월 16일, 단 3박 4일 안에 벌어진 일을 다룹니다. 현재의 시간은 순서대로 흐르고, 기억 삭제 과정은 최근 기억부터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역방향으로 진행됩니다. 이 구조를 이해하고 나서 다시 보면 장면 하나하나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제가 두 번 봤을 때 비로소 클레멘타인의 머리 색깔이 단순한 개성 표현이 아니라 감정의 타임스탬프라는 걸 알아챘습니다.
타임스탬프란 특정 시점을 기록하는 표시를 뜻하는데, 클레멘타인은 빨간 머리로 첫 만남을 시작하고, 권태기 즈음 오렌지로 바꾸고, 완전한 결별을 결심했을 때 파란색인 블루 루인으로 바꿉니다. 블루 루인은 영어로 '파란 폐허'를 의미하고, 영화 안에서 칵테일 이름이기도 합니다. 기억이 지워진 뒤 다시 만난 조엘에게 그 칵테일을 만들어 주는 장면은, 두 사람이 스스로는 모르는 사이에 사랑의 잔해 위에서 다시 시작하는 순간입니다. 제가 이 부분을 이해하고 나서 살짝 울컥했습니다.
각본가인 찰리 카우프만의 비선형 서사 기법은 이 영화에서 단순한 형식적 실험이 아닙니다. 기억을 지우는 행위 자체가 시간을 거꾸로 돌리는 것이고, 그 방향이 이야기 구조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습니다. 몇 안 되는 감독 중에서 이 정도 수준으로 형식과 내용을 일치시키는 각본가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기억 삭제가 정말 해방일까요
라쿠나사가 하는 일은 특정 인물과 관련된 기억 회로를 통째로 삭제하는 것입니다. 기억 회로란 뇌에서 특정 경험과 연결된 신경망 패턴을 의미하는데, 영화는 이것을 SF적 설정으로 가져오되 실제 심리학적 맥락과 꽤 정확하게 맞닿아 있습니다.
미국의 심리학자 신디 하잔의 연구에 따르면 열정적인 낭만적 사랑의 유효 기간은 평균 2년에서 3년입니다(출처: Psychology Today). 조엘과 클레멘타인의 관계가 정확히 2년 만에 파탄 나는 것은 이 맥락에서 보면 무척 현실적입니다. 처음의 열정이 식고 권태기가 찾아오면 우리는 종종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라쿠나사는 그 욕망을 실제로 실현해 주는 곳입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저는 이것이 진짜 해방인지 의심하게 됩니다. 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기억 삭제는 사랑을 없앤 게 아니라 사랑의 맥락만 없앤 것이라고 봅니다. 조엘은 클레멘타인이라는 이름을 듣고 놀리는 노래를 부르지 않습니다. 기억에는 없지만 몸이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텍스트는 삭제되어도 컨텍스트, 즉 두 사람이 오랜 시간을 함께하며 쌓은 관계의 맥락은 습관과 반응 속에 남아 있습니다.
이 점에서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단순한 SF 로맨스를 넘어섭니다. 철학자 바뤼흐 스피노자는 "모든 한정은 부정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한정이란 특정 조건을 제한하거나 배제하는 행위를 뜻하는데, 사랑에서 어두운 기억만 골라 지운다는 것은 그 사랑 전체를 부정하는 행위가 됩니다. 좋은 기억만 남기고 싶다는 욕망은 인간적이지만, 그 욕망대로 사랑을 다듬으면 사랑이 아닌 무언가가 남습니다.
실제로 저도 어떤 관계가 끝나고 나서 그 시간이 통째로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 나서는 그 생각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지겨워서 헤어진 관계인데도 기억을 잃고 싶지 않아서 발버둥 치는 조엘의 모습이 너무 슬펐거든요. 그 간절함은 그 사랑이 결국 진짜였다는 증거처럼 보였습니다.
이 영화에서 기억 삭제를 둘러싼 핵심 대립 구도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텍스트(기억 내용)는 삭제되어도 컨텍스트(관계의 맥락)는 몸에 남는다
- 선택적 기억 삭제는 사랑을 완성시키는 것이 아니라 총체적으로 부정하는 결과를 낳는다
- 기억을 지운 뒤에도 두 사람은 같은 장소에서, 같은 방식으로 다시 끌린다

"오케이"가 세상에서 가장 묵직한 이유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조엘이 말하는 "오케이"는 제가 영화에서 들어본 대사 중 가장 무게감이 느껴지는 말 중 하나입니다. 이 한 마디가 단순한 동의가 아니라 거대한 체념이자 강력한 의지의 선언이기 때문입니다.
수미상관 구조란 작품의 시작과 끝이 같은 요소로 호응하는 서사 기법인데, 이 영화는 몬탁에서의 첫 만남으로 시작해서 같은 장소에서의 재만남으로 끝납니다. 그런데 끝의 조엘은 처음의 조엘과 다릅니다. 기억 속에서 삭제에 저항하며 클레멘타인을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 숨기는 과정에서, 조엘은 이전에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자신의 내밀한 아픔을 그녀에게 고백합니다. 기억은 지워졌지만, 그 상상 속의 고백이 무의식 어딘가에 남아 이번에는 다른 사람으로 그녀를 만나도록 만든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엔드 크레딧에 흐르는 벡의 노래 Everybody's Gotta Learn Sometime의 가사 구조도 흥미롭습니다. 이 곡은 "모두가 언젠가는 배워야 한다"는 말로 끝나는데, 그 목적어가 생략되어 있습니다. 결국 목적어는 "사랑하는 법"입니다. 찰리 카우프만이 이 노래를 엔딩에 붙인 것은 영화 전체가 그 배움의 과정을 보여주는 이야기임을 말하는 것이라고 보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 영화가 해피엔딩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것이 사실 큰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영화는 두 사람이 또다시 싸우고 질리고 헤어질 수 있다는 걸 숨기지 않습니다. 오케이라는 말은 그 결말을 알면서도 시작하겠다는 선언입니다. 사랑과 행복이 반드시 함께 가지 않아도 사랑할 수 있다는, 어떻게 보면 아주 비관적이고 어떻게 보면 아주 넓은 사랑관이 이 두 글자에 담겨 있습니다.
영화 속 두 커플인 조엘과 클레멘타인, 그리고 하워드와 메리의 이야기가 병렬 서사(두 개의 유사한 이야기를 동시에 전개하는 구조)로 배치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한 쌍은 재회를 택하고, 한 쌍은 결국 떠납니다. 어느 쪽이 옳다고 단정하지 않습니다. 사랑에 정해진 답이 없다는 것, 이 영화가 끝까지 손에서 놓지 않는 태도입니다(출처: 미쉘 공드리 감독 인터뷰, Criterion Collection).
이터널 선샤인은 볼 때마다 다른 장면이 마음에 걸립니다. 10대에 봤을 때는 운명적인 재회가, 20대 후반에 봤을 때는 함께한 사소한 순간들이 가슴을 쳤다는 분들의 이야기가 저도 공감이 됩니다. 처음 보시는 분이라면 타임라인을 정리하면서 보시길 권하고, 이미 보셨던 분이라면 클레멘타인의 머리 색깔과 조엘의 일기장 페이지를 유심히 보시면 이전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