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작이 될 수 있었던 영화가 스스로 발목을 잡는 경우를 본 적 있으신가요? 2007년 대니 보일 감독의 선샤인을 처음 봤을 때 딱 그 기분이었습니다. 중반부까지 제 인생 영화가 될 뻔했는데, 보고 나서 한동안 이 영화에 대해 생각을 정리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 글을 씁니다.태양을 가장 아름답게 담은 영상미SF 영화가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선샤인이 처음으로 알려줬습니다. 죽어가는 태양을 다시 살려내기 위해 이카루스 2호가 나아가는 장면들은, 단순한 우주 배경이 아니라 하나의 회화처럼 느껴졌습니다.영화는 시각적 연출 면에서 렌즈 플레어(lens flare)를 매우 공격적으로 활용합니다. 렌즈 플레어란 강한 광원이 카메라 렌즈에 직접 닿을 때 생기는 빛 번짐 현상인데, 일반적으로는 제거 대상으로 ..
인터스텔라를 다시 보고 나서 이상하게 중학교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그때 처음 봤던 SF영화 한 편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거든요. 1997년작 콘택트. 일반적으로 인터스텔라가 우주 SF의 정점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이 영화가 주는 철학적 무게는 그보다 훨씬 깊습니다. 칼 세이건이 우주에 던진 질문콘택트는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합니다. 칼 세이건은 SETI(외계지적생명체탐색, Search for Extraterrestrial Intelligence) 연구의 상징적 인물로, 여기서 SETI란 전파 망원경 등을 통해 우주에서 오는 인위적인 신호를 탐색하는 과학 프로그램을 말합니다. 영화는 바로 그 실제 연구를 배경으로 삼았기 때문에 다른 SF들과 출발점이 다릅니다.주인공 엘..
시간여행 영화를 좋아한다고 말하면 주변에서 꼭 이 질문이 돌아옵니다. "그럼 백 투 더 퓨처는 봤어?" 저는 그때마다 이렇게 말합니다. "2편이 바이블입니다." 1편과 3편이 단순히 한 시대를 왕복하는 구조라면, 2편은 미래와 뒤틀린 현재와 과거를 종횡무진 오가는 이야기라 처음 봤을 때 머릿속이 한참 정리가 안 됐던 기억이 납니다. 그럼에도, 아니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가 저에게 최애로 남아 있습니다.팬도 놓치기 쉬운 설정 오류와 숨겨진 디테일영화를 처음 봤을 때부터 저는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혹시 같은 생각 해보신 적 있지 않으신가요? 마티가 1985년에서 2015년으로 곧장 점프했다면, 그 사이 30년 동안 이 우주에서 마티는 사실상 부재 상태입니다. 그런데 힐밸리에는 늙은 마..
저는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그냥 울고 끝냈습니다. 엔딩 장면에서 눈물이 흘렀고, 그게 전부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다시 보고 나서야 깨달았습니다. 이 영화는 감동적인 척하면서 사실 인간을 가장 냉정하게 해부하는 작품이라는 것을. 스필버그의 AI, 개봉 당시에도 지금도 논란이 많은 이 영화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 제 경험을 바탕으로 풀어보겠습니다.이 영화가 낯설게 느껴진다면, 구조 때문입니다처음 AI를 보는 분들이 가장 당황하는 지점이 있습니다. 러닝타임이 약 2시간 20분인데, 50분쯤 지나면 이야기가 사실상 한 번 끝난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데이빗이 숲에 버려지는 장면이 끝나면, 이후 펼쳐지는 세계는 화법도, 공간도, 시각적 디자인도 완전히 달라집니다. 제가 처음 볼 때도 "이게 같은 영화..
에이리언 1편을 처음 비디오로 봤던 게 초등학교 4학년 때였습니다. 밀폐된 우주선 안에서 기괴한 생명체에게 쫓기는 장면이 어찌나 무서웠는지, 그날 밤 잠을 제대로 못 잤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1979년 1편 이후 30년 넘게 아무도 답해주지 않던 질문, 즉 그 외계 우주선의 정체와 에이리언의 기원이 2012년 프로메테우스에서 드디어 다뤄진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설렜는지 모릅니다. 막상 보고 나니 2시간이 그냥 순삭이었고, 손에 땀이 날 정도였습니다. 30년 만에 돌아온 리들리 스콧, 그리고 프리퀄의 무게리들리 스콧 감독은 SF 장르에서 블레이드 러너와 에이리언 단 두 편으로 거장 소리를 듣게 된 감독입니다. 사이버펑크(cyberpunk)라는 장르 자체의 문법을 정립했다는 평가를 받는 블레이드 러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