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 영화를 사실 처음부터 그닥 보고 싶은 마음은 없었습니다. 2000년대 초 개봉한 로마 배경의 고전 같은 느낌이 왠지 무겁게 느껴졌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밤 우연히 틀었다가 새벽까지 꼼짝도 못 하고 앉아서 봤습니다. 러닝타임 2시간 40분이 그렇게 짧게 느껴진 영화는 글래디에이터 전에도, 후에도 없었습니다.막시무스가 검을 버린 순간, 저는 무너졌습니다영화는 서기 180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가 게르만족과의 마지막 전투를 앞두고 시작됩니다. 북부군 총사령관 막시무스 데시무스 마르디우스는 전장에서 압도적인 전술로 승리를 이끌어낸 직후, 황제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제안을 받습니다. 로마를 공화정 체제로 되돌리는 임무를 맡아달라는 것이었습니다.여기서 공화정(Republic)이란, 황제 1인이 아닌..
이 영화의 첫 인상은 그냥 여자 둘이 여행하다 사고 치는 영화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장면에서 눈물이 맺혔습니다. 1991년작 델마와 루이스, 왜 지금도 명작으로 불리는지 보고 나서야 비로소 이해했습니다. 벼랑 끝을 향해 달리는 그 차가 추락이 아니라 비행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로드무비라는 장르, 왜 여성이 주인공이면 달라지는가저도 처음엔 로드무비 하면 남자들의 장르라고 막연히 생각했습니다. 끝없는 사막 도로, 거친 자유, 오토바이. 1969년 출처: IMDB, 이지 라이더(Easy Rider)가 장르로서 로드무비를 영화사에 정착시킨 이후, 이 공간은 오랫동안 남성 서사의 전유물이었습니다. 미국 66번 국도를 배경으로 한 두 레인 블랙탑, 가족 해체와 기억 상실을 다룬 파리, 텍사스 역시 모두..
이수역 아트나인 극장에서 파이널 컷을 봤습니다. 집에서 몇 번을 돌려본 영화인데, 극장 대형 스크린에 반젤리스 음향이 깔리는 순간 그 느낌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1982년에 만든 영화가 2024년 극장에서 이렇게 압도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는 게, 놀라웠습니. 그래서 이 영화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그리고 로이 배티라는 캐릭터가 왜 40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지 한번 풀어보고 싶었습니다.기적처럼 완성된 제작비화블레이드 러너는 처음부터 완벽하게 설계된 걸작이 아닙니다. 제가 직접 제작 과정을 들여다보니, 이 영화는 거의 기적에 가까운 해프닝으로 완성된 작품이었습니다.출발점은 칠레 출신 감독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의 무산된 듄 프로젝트(1974)였습니다. 여기서 '무산된 듄 프로젝트'란, 살바도르 달리, 오손..
에이리언 1편을 처음 비디오로 봤던 게 초등학교 4학년 때였습니다. 밀폐된 우주선 안에서 기괴한 생명체에게 쫓기는 장면이 어찌나 무서웠는지, 그날 밤 잠을 제대로 못 잤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1979년 1편 이후 30년 넘게 아무도 답해주지 않던 질문, 즉 그 외계 우주선의 정체와 에이리언의 기원이 2012년 프로메테우스에서 드디어 다뤄진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설렜는지 모릅니다. 막상 보고 나니 2시간이 그냥 순삭이었고, 손에 땀이 날 정도였습니다. 30년 만에 돌아온 리들리 스콧, 그리고 프리퀄의 무게리들리 스콧 감독은 SF 장르에서 블레이드 러너와 에이리언 단 두 편으로 거장 소리를 듣게 된 감독입니다. 사이버펑크(cyberpunk)라는 장르 자체의 문법을 정립했다는 평가를 받는 블레이드 러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