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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쥬라기 월드 새로운 시작 (세계관, 공룡 CG, 각본)

by 와일드그로브 2026. 4. 2.

쥬라기월드 새로운 시작 해석 대표 이미지

공룡 영화가 32년을 이어온다는 게 당연한 일일까요. 1993년 쥬라기 공원 1편이 비디오테이프로 돌던 시절, 동생과 방 안에서 그 화면을 보며 "저게 진짜 공룡이야?"를 연발하던 저로서는 솔직히 이 시리즈가 일곱 번째 작품까지 나오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2025년 개봉한 쥬라기 월드: 새로운 시작, 과연 32년 치 기대를 받아줄 수 있었을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그러지 못했습니다.

세계관: 소프트 리부트가 선택한 방향

이번 작품은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2022) 이후 5년 후를 배경으로 합니다. 소프트 리부트(Soft Reboot)란 기존 시리즈의 세계관을 완전히 폐기하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이야기와 캐릭터로 사실상의 재출발을 하는 방식을 뜻합니다. 전편의 주인공들을 내보내고 스칼렛 요한슨, 마허샬라 알리, 조나단 베일리 등 새 배우진으로 채운 이 작품이 딱 그 방식입니다.

세계관 설계 자체는 꽤 영리합니다. 공룡이 현대 도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점차 사라지고, 인간의 생활권과 격리된 적도 근방에서만 살아남는다는 설정은 전작들이 만들어놓은 혼돈을 자연스럽게 수습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저는 이 설정을 처음 들었을 때 오히려 기대가 올라갔습니다. 마침내 정리된 룰 위에서 제대로 된 이야기를 해주겠구나 싶었거든요.

그런데 그 세계관을 움직이는 동력이 "신약 개발을 위한 육해공 대형 공룡의 DNA 채취"입니다. 인류를 구할 신약의 핵심 물질이 가장 거대한 공룡들의 유전자 안에 있다는 설정이죠. 여기서 DNA 채취라는 임무 자체보다 그 임무를 수행하는 방식이 문제였습니다. 제가 직접 보고 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이 "저 팀이 진짜 이 임무를 할 의지가 있는 건가"였을 정도입니다.

이 소프트 리부트가 고른 방향을 한 줄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기존 팬을 위해 쥬라기 공원 연구소와 전작 오마주를 남겨두었습니다.
  • 신규 관객을 위해 세계관 설명을 친절하게 처음부터 깔아줍니다.
  • 그러나 두 방향을 동시에 잡으려다 어느 쪽도 깊이 가지 못했습니다.

감독 가렛 에드워즈는 고질라(2014), 크리에이터(2023)를 통해 비주얼 연출에서 검증된 인물입니다. 각본가 데이비드 코엡은 스티븐 스필버그의 페르소나로 불릴 만큼 굵직한 필모그래피를 가진 작가입니다. 이 조합이 실패했다는 게 저로서는 정말 예상 밖이었습니다.

공룡 CG: 스크린 위에서만 살아있는 것들

이 영화에서 온전히 돈값을 한다고 말할 수 있는 건 공룡 시퀀스뿐입니다. 그리고 그 시퀀스는 실제로 볼 만합니다. 제 경험상 공룡 관련 영화를 이 시리즈만큼 꾸준히 봐온 입장에서도 이번 CG 퀄리티는 나쁘지 않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CG(Computer-Generated Imagery)란 컴퓨터로 만들어낸 디지털 그래픽을 실사 영상에 합성하는 기술을 의미합니다. 1993년 쥬라기 공원이 이 기술로 업계를 뒤바꿔 놓은 이후 30년 넘게 발전을 거듭했고, 이번 작품에서는 돌연변이 공룡인 디렉스(Direx, 디스트로투스 렉스의 약칭)를 비롯해 기존 시리즈에서 본 적 없는 크리처 디자인들이 등장합니다.

케찰코아틀루스 시퀀스 후반부에서 인물이 잡아먹히는 장면은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봤던 장면이었습니다. 점프 스케어 없이 카메라가 제3자 시점을 유지하면서 대상 인물을 중앙에 고정해 두는 연출 방식은 오히려 예측 가능성이 주는 공포를 이용했고, 그 효과가 제대로 작동했습니다. 이건 가렛 에드워즈 특유의 감각이 살아있는 구간이었습니다.

다만 트레일러 공개 시점부터 논란이 됐던 스피노사우루스 디자인 변경 문제는 실제로 봐도 아쉬웠습니다. 고생물학적 고증(古生物學的 考證)이란 화석 자료를 바탕으로 생물의 외형, 행동 양식 등을 과학적으로 재현하는 작업을 말합니다. 연구가 축적될수록 공룡의 실제 모습은 계속 갱신되는데, 스피노사우루스의 경우 2014년 네이처지 논문 이후 네 발 보행 가능성과 더 낮고 납작한 체형이 제시된 바 있습니다(출처: Nature). 그 결과물이 이번 영화에 반영된 셈인데, 기존 팬 입장에서는 낯설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공룡들이 나오는 장면만큼은 바다, 지상, 하늘 순서로 다채롭게 구성되어 있고, 조그만 공룡부터 초대형 개체까지 스펙트럼이 넓습니다. 하지만 공룡이 사라지면 영화는 급격히 힘을 잃습니다.

각본: 무너진 긴장감의 원인

이 영화의 가장 큰 문제는 캐릭터 설계에서 발생한 긴장감 붕괴입니다. 제가 영화를 보면서 가장 많이 한 생각이 "제발 누가 저 가족 좀 잡아먹어줬으면"이었는데, 이런 감정이 드는 순간 블록버스터 서바이벌 공룡 영화는 이미 실패한 겁니다.

내러티브 구조(Narrative Structure)란 이야기가 관객에게 전달되는 순서와 방식을 설계하는 틀을 뜻합니다. 이 영화의 구조상 문제는 조라 팀과 별개로 등장하는 민간인 가족 4인방이 초반부터 납득하기 어려운 행동으로 소개된다는 점입니다. 모사사우루스가 서식하는 해역에 소형 요트로 들어온 이유가 "예전에 한 번 해봤어서"라는 설정은 현실적 개연성을 완전히 날려버립니다.

이 문제가 더 심각한 이유는 기승전결의 '기'에 해당하는 초반부에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첫인상이 망가지면 이후 어떤 장면을 배치해도 감정이입이 어렵습니다. 데이비드 코엡의 각본이 스필버그와 함께할 때 힘을 발휘했던 건 긴장감과 공감 가능한 캐릭터의 균형이 있었기 때문인데, 이번에는 그 균형이 맞지 않았습니다. 참고로 영화 흥행 지표인 CinemaScore(시네마스코어)는 개봉 당일 관객 반응을 A~F 등급으로 수치화하는 지표로, 블록버스터 공룡 영화에서 C 이하를 받으면 입소문 흥행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출처: CinemaScore).

저는 개연성에 지나치게 엄격한 관객이 아닙니다. 3억 8천만 년 전 생물이 되살아난 세계관을 수용하면서 개연성 타령을 하는 건 말이 안 된다는 것도 압니다. 그런데 영화가 스스로 제시한 룰조차 지키지 않을 때는 얘기가 다릅니다. 신약 원정대가 장비를 "무겁다"는 이유로 전부 버리고 공룡 섬에 들어가는 장면은 그 선을 넘었습니다.

각본의 아쉬운 지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조라 팀의 임무 수행 방식이 비논리적으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 가족 4인방의 첫 등장 방식이 감정이입을 원천 차단합니다.
  • 캐릭터별 갈등과 가치관 충돌이 설정만 있고 깊이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 디렉스의 혼종 설정이 기존 시리즈의 혼종 공룡들과 달리 서사적 기능을 하지 못합니다.

결국 1993년 쥬라기 공원이 위대했던 건 CG 때문만이 아니었습니다. 그 영화는 공룡이 무섭고 인물이 살아있었습니다. 저와 동생이 방 안에서 비디오를 끊임없이 되감은 건 공룡이 예뻐서가 아니라 그 공간이 긴장감으로 가득 찼기 때문이었습니다.

32년이 지나도 그 공식은 바뀌지 않습니다. 쥬라기 월드: 새로운 시작은 스크린 위 공룡의 완성도는 높아졌지만 그 공룡 주위를 채우는 이야기가 비어있었습니다. 공룡이 나올 때만 심장이 뛰고 나머지 시간이 지루하다면, 133분은 꽤 긴 시간입니다. 이 영화가 진짜 새로운 시작이 되려면 다음 작품에서는 비주얼이 아닌 이야기부터 다시 세워야 할 것입니다. 공룡 IP(지식재산권)는 아직 살아있습니다. 그걸 살리는 건 CG가 아니라 각본이라는 사실을 이번 작품이 역설적으로 증명해줬습니다.


참고: https://youtu.be/rfIFxrM3g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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