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를 다시 꺼내보는 데는 보통 이유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스무 살 무렵 처음 봤던 영화를 서른이 넘어 다시 틀었을 때, 같은 장면에서 전혀 다른 감정이 올라왔습니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거꾸로 살아도, 똑바로 살아도, 삶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결국 같다는 걸 이 영화는 조용히 말해줍니다.
원작 각색: 파편적인 단편을 스크린으로
이 영화의 원작은 F. 스콧 피츠제럴드가 1922년에 발표한 단편소설입니다. 위대한 개츠비로 더 잘 알려진 피츠제럴드가 쓴 작품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분들도 많습니다. 원작은 "청춘이 인생의 끝에 놓여 있다면"이라는 아나톨 프랑스의 발언에서 착안해 쓴 기묘하고 짧은 이야기입니다.
문제는 원작 자체가 지나치게 파편적이라는 점입니다. 사건들이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어 그대로 영화화하기 어렵다는 평이 많았습니다. 여기서 각색(screenplay adaptation)이란 원작의 핵심 설정과 주제는 살리되, 영화라는 매체에 맞게 구조와 감정선을 새로 짜는 작업을 의미합니다. 에릭 로스의 각본은 이 어려운 작업을 꽤 깔끔하게 해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시간이 거꾸로 흐른다는 설정을 유지하면서도 벤자민과 데이지의 사랑이라는 중심축을 단단하게 세웠습니다.
데이비드 핀처 감독이 이 영화를 선택한 것 자체가 이색적이었습니다. 세븐, 파이트 클럽처럼 어둡고 날선 작품들로 유명한 감독이 이렇게 잔잔하고 감성적인 이야기를 만든다는 점에서 팬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렸습니다. 핀처 작품 중 가장 보기 편하다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그게 꼭 칭찬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특유의 집요한 긴장감이 빠진 자리에 뭔가 아쉬운 빈틈이 생겼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려웠습니다.
주요 제작 정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원작: F. 스콧 피츠제럴드, 1922년 단편소설 벤자민 버튼의 기묘한 이야기
- 각본: 에릭 로스 (포레스트 검프 각색으로도 유명)
- 감독: 데이비드 핀처
- 제작비: 약 1억 5천만 달러 (블록버스터급 예산)
- 수상: 아카데미 시각효과상 등 3개 부문 수상
이별과 만남: 거꾸로 사는 삶이 더 선명하게 느끼는 것들
영화의 중심 감정은 이별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가 특별한 이유는, 이별을 슬픔으로 소비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벤자민은 태어날 때부터 80세 노인의 몸을 가지고 있고, 시간이 흐를수록 젊어집니다. 그 말은 그가 겪는 모든 만남이, 처음부터 이별을 향해 걸어가는 만남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 설정을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과거를 그리워할 때 느끼는 그 감각, 어릴수록 더 달콤하게 기억되는 첫사랑의 설렘 같은 것들이 벤자민에게는 정반대로 작동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나이 들수록 첫사랑이 아련해지는 게 아니라, 실제로 그 감각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삶. 그게 부러운 건지, 슬픈 건지 판단하기 어려웠습니다.
체코의 소설가 밀란 쿤데라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사랑이 잊을 수 없는 것이 되려면, 처음 순간부터 우연들이 사랑 위에 내려앉아 있어야 한다"고 썼습니다. 이 문장이 영화를 보는 내내 머릿속에서 맴돌았습니다. 벤자민과 데이지의 만남은 우연들의 연속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벤자민이 양로원에 버려지지 않았다면, 데이지의 할머니가 그 양로원을 찾아오지 않았다면, 그 사랑은 시작도 못 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우연의 축적을 종종 운명(fatalism)이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fatalism이란 어떤 결과가 미리 정해진 것처럼 느껴지는 믿음의 방식을 의미합니다. 물론 쿤데라처럼 "그건 그냥 우연일 뿐"이라고 냉정하게 정리하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그 설명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충분하지도 않다고 느낍니다. 수십 개의 우연이 한 방향으로 쌓였을 때, 우리는 그걸 단순히 운이라고 부르기 어렵습니다.
데이지가 불의의 사고를 당하는 장면 이후, 벤자민이 하는 말이 제게 가장 오래 남았습니다. 인생은 우리가 종잡을 수 없는 우발적 사건들의 연속이라고. 울컥했습니다. 요즘 아무 의미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시기에 이 대사를 들으니, 위로인지 채찍인지 모르겠는데 어쨌든 마음을 건드렸습니다.
명작 평가: 핀처답지 않지만, 그래서 더 넓은 영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이 영화는 작품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미장센(mise-en-scène), 즉 화면 안에 담긴 공간 배치와 빛, 소품, 배우의 위치 등을 통해 이야기를 시각적으로 구성하는 방식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핀처의 영상 연출은 아름답다는 데 이견이 없지만, 1억 5천만 달러라는 제작비가 투입된 것 치고 시각적 스펙타클보다는 감성적 완성도에 집중한 작품입니다.
문제는 CG(컴퓨터 그래픽)의 티가 지나치게 드러나는 장면들이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몰입도(immersion)란 관객이 영화 속 세계를 실제처럼 받아들이는 정도를 의미하는데, CG가 너무 눈에 띄면 그 몰입이 깨집니다. 제가 직접 다시 봤을 때, 젊어지는 브래드 피트의 얼굴을 합성하는 일부 장면에서 그 경계가 어색하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기술적으로는 당시 기준으로 최고 수준이었을 텐데, 지금 다시 보면 오히려 그 시대가 보입니다.
핀처 입문작으로 자주 추천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나를 찾아줘나 세븐과 같은 감독의 작품이라는 걸 모르는 분들도 꽤 있다고 하는데, 그만큼 핀처 특유의 날카로운 개성이 이 영화에서는 많이 눌려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다르게 말하면, 영화를 자주 보지 않는 분들도 편하게 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영화비평 사이트 로튼 토마토(Rotten Tomatoes)에서 이 영화는 평론가 점수 71%, 관객 점수 80%를 기록하고 있습니다(출처: Rotten Tomatoes). 평론가와 관객 사이의 온도 차가 이 영화를 잘 설명해주는 것 같습니다. 예술적으로는 핀처 최고작이 아니지만, 보고 나서 뭔가 남는 영화입니다.
손익분기점(break-even point)이란 제작비와 마케팅 비용을 합산한 금액을 흥행 수익이 넘어서는 지점을 의미하는데, 이 영화는 그 지점을 넘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당시 핀처 필모그라피에서 가장 높은 흥행 기록을 세웠다는 점은 아이러니합니다(출처: Box Office Mojo). 상업적으로는 아쉬웠지만, 문화적으로는 오래 회자되는 작품이 된 셈입니다.
바로 살아도, 거꾸로 살아도 종착점은 죽음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이 영화가 계속 기억되는 이유는 그 단순한 사실을 너무 극적이지 않게, 그러나 너무 무덤덤하지도 않게 담아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클라이맥스도 반전도 없는데 그래서 더 인생 같은 영화. 처음 봤던 스무 살의 저와 서른이 지나 다시 본 저가 다른 장면에서 울컥했다면, 아마 몇 년 뒤에 또 다른 장면이 걸릴 것입니다. 그런 영화는 몇 편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