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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가 코앞인데 딱히 볼 영화가 없어서 고민하다가 결국 또 틀게 되는 영화가 있습니다. 물론 올해 크리스마스까지는 아직 몇달 남아 있지만 그냥 한번더 보고 싶은 마음에 또 봤는데 "아, 나 이 영화 완전히 외웠는데"라고 생각하면서도 끝까지 봤습니다. 2003년 개봉 이후 23년이 지난 지금도 매년 12월이면 어김없이 회자되는 이 영화, 왜 이렇게 자꾸 보게 되는 걸까요.
히드로 공항 장면이 왜 그렇게 마음을 건드릴까요
영화는 런던 히드로 공항(Heathrow Airport)의 입국장 실제 촬영 장면으로 시작하고 끝납니다. 여기서 히드로 공항 입국장이란, 오랫동안 떨어져 있던 사람들이 마침내 다시 만나는 장소로, 감독 리처드 커티스는 이곳이야말로 사랑이 가장 날것으로 드러나는 공간이라고 봤습니다. 쉽게 말해 세상에서 포옹이 가장 많이 일어나는 곳이죠.
저는 이 장면을 볼 때마다 눈물이 납니다. 처음엔 그냥 분위기 탓인가 싶었는데, 몇 해 전 인천공항에서 동생을 배웅하고 나서야 이유를 알게 됐습니다. 출국장에서 동생을 보내고 한 층 내려왔더니 입국장이었는데, 피켓 들고 기다리던 사람들이 달려와 서로 껴안는 장면을 보면서 저도 모르게 또 울었습니다. 그때 이 영화가 먼저 떠올랐습니다.
공항이라는 공간은 누군가는 설레고, 누군가는 외롭고, 누군가는 벅차고, 누군가는 지루한 곳입니다. 영화는 바로 그 복잡한 감정들을 전부 담아내는 장치로 공항을 사용했고, 그게 23년이 지나도 통하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로맨틱 코미디(Romantic Comedy) 장르, 흔히 '로코'라고 줄여 부르는 이 형식은 가볍고 예측 가능하다는 인식이 있습니다. 그런데 러브 액추얼리는 로코의 문법을 따르면서도 공항 실제 장면이라는 다큐멘터리적 장치를 덧대어 감정의 진짜를 건드립니다. 저는 이 구성이 이 영화를 단순한 연말 로코와 구분 짓는 핵심이라고 봅니다. 출처: 영국영화협회(BFI)에 따르면 이 영화는 영국 로맨틱 코미디 역사에서 흥행과 비평 양쪽에서 손꼽히는 작품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옴니버스 구성, 사랑의 어느 버전을 고르시겠습니까
러브 액추얼리는 옴니버스(Omnibus) 형식으로 구성된 영화입니다. 옴니버스란 독립된 여러 이야기가 하나의 큰 주제 아래 느슨하게 연결되는 서사 방식으로, 각 에피소드가 독자적으로 감동을 주면서도 전체 흐름 안에서 공명합니다. 이 영화에는 무려 10쌍 가까운 인물들의 사랑이 동시에 펼쳐집니다.
에피소드마다 결이 다릅니다. 영국 총리 데이비드와 직원 나탈리의 사랑은 권력 차이를 웃음으로 희석시키고, 언어가 통하지 않는 소설가 제이미와 포르투갈인 오렐리아의 이야기는 말 없이도 마음이 닿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제가 직접 보면서 가장 몽글몽글했던 에피소드가 바로 이 둘의 이야기였는데, 대사 없이 서로 할 말만 하다가 결국 연못에 같이 빠지는 장면에서 처음 웃고, 나중에 또 울었습니다.
반면 솔직히 불편한 에피소드도 있습니다. 절친의 아내 줄리엣에게 스케치북으로 마음을 고백하는 마크의 장면은 처음 봤을 때는 로맨틱하다고 느꼈는데, 다시 보니 친구의 아내에게 고백하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편하게 볼 수만은 없었습니다. 또 비서 미아를 통해 아내를 배신하는 해리의 에피소드는 영화가 불륜을 지나치게 가볍게 소비하는 것 아닌가 싶은 찜찜함을 남겼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불편하다고 보는 시각도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저 역시 완전히 동의하기 어려운 구석이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이 영화가 설득력을 갖는 이유는 사랑의 달콤한 면만 모아놓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희로애락(喜怒哀樂)이 실제로 고루 담겨 있고, 그것이 옴니버스라는 형식 덕분에 서로 상쇄되지 않고 각자의 무게를 유지합니다. 각 에피소드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데이비드 & 나탈리: 권력 차이를 넘은 총리의 용기 있는 선택
- 제이미 & 오렐리아: 언어 장벽을 뛰어넘은 순수한 마음
- 마크 & 줄리엣: 고백 한 번으로 마음을 정리하는 짝사랑
- 샘 & 조한나: 드럼 연습으로 사랑을 쟁취하려는 초등학생의 순정
- 해리 & 캐런: 배신 앞에서도 가족을 지키려는 아내의 쓸쓸한 선택
출처: IMDb에 따르면 러브 액추얼리는 2003년 개봉 이후 전 세계 2억 4천만 달러 이상의 흥행을 기록했으며, 제작비 대비 약 4배 이상의 수익을 올린 작품입니다.
크리스마스 영화라는 말이 왜 딱 맞는 표현일까요
저는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달달한 로코구나" 하고 넘겼습니다. 그런데 몇 번을 더 보고 나서야 이건 사실 크리스마스라는 시간이 만들어주는 마법에 관한 영화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크리스마스 시즌 특유의 감성, 즉 한 해가 끝나기 전에 뭔가를 해야 한다는 절박함과 용기가 영화 속 모든 고백의 동력이 됩니다.
샘이 공항에서 조한나를 향해 뛰어가는 장면, 데이비드가 나탈리의 집 동네를 문 두드리며 찾아가는 장면, 제이미가 포르투갈어를 더듬더듬 배워 청혼하러 가는 장면. 이 모든 것이 크리스마스라는 마감 기한 안에 일어납니다. 서사 구조상 크리스마스 데드라인(Christmas Deadline), 즉 인물들이 감정을 행동으로 옮기게 만드는 시간적 압박 장치가 이 영화 전체를 끌고 가는 엔진입니다. 쉽게 말해 크리스마스가 아니었으면 아무도 고백하지 않았을 겁니다.
제가 이 영화를 크리스마스 시즌 외에 한번 본 적이 있는데, 솔직히 그 감흥이 절반도 안 됐습니다. 12월의 차가운 공기와 캐럴, 트리 불빛이 배경으로 깔려 있을 때 이 영화가 비로소 완성된다는 것을 그때 확실히 알게 됐습니다. 명성에 비해 기대치를 높게 잡고 보면 평범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의견도 이해합니다. 다만 저는 시간이 지나도 "이렇게 세련되게 사랑을 표현할 수 있다니"라는 감흥이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리처드 커티스(Richard Curtis) 감독은 노팅힐, 브리짓 존스의 일기 등을 통해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문법을 정립한 인물로 평가받습니다. 그가 이 영화에서 보여준 앙상블 캐스팅(Ensemble Casting), 즉 여러 배우가 동등한 비중으로 등장하는 방식은 당시로서도 드물었고, 지금도 이 규모로 성공한 로코는 흔치 않습니다. 휴 그랜트, 콜린 퍼스, 키이라 나이틀리, 알란 릭맨 등 당대 최고의 영국 배우들이 한 화면에 모였다는 사실만으로도 다시 볼 이유가 충분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러브 액추얼리 처음 보는데 영어 대사가 많아도 괜찮을까요?
A. 자막이 있다면 전혀 문제없습니다. 오히려 제이미와 오렐리아처럼 언어가 통하지 않는 캐릭터들의 에피소드가 있어서, 대사보다 표정과 상황으로 감정을 전달하는 장면들이 꽤 됩니다. 자막 없이도 충분히 웃기는 장면들이 있을 정도입니다.
Q. 스케치북 고백 장면이 불륜 아닌가요?
A. 엄밀히 말하면 짝사랑 고백이지 실제 불륜 관계는 아닙니다. 다만 친구의 아내에게 마음을 드러낸다는 설정 자체가 불편하다는 시각은 충분히 이해됩니다. 저도 볼 때마다 이 에피소드는 마음 편하게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영화의 가장 유명한 장면이면서 동시에 가장 논란이 많은 장면이기도 합니다.
Q. 러브 액추얼리, 혼자 봐도 재밌나요?
A. 저는 혼자 본 적이 더 많은데, 오히려 혼자 보면서 각 에피소드를 더 꼼꼼히 따라가게 됐습니다. 연인이나 가족과 함께 보면 감동이 증폭되는 건 맞지만, 혼자 보면서 해리와 캐런의 에피소드처럼 쓸쓸한 결을 더 진하게 느끼는 것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Q. 기대를 너무 크게 잡고 보면 실망할 수도 있나요?
A. 솔직히 그럴 수 있습니다. 평점이 높고 명작이라는 말을 너무 많이 들으면 기대치가 올라가서 상대적으로 감동이 줄어드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제 경험상 "크리스마스 분위기 내기에 딱 좋은 영화"라는 마음으로 가볍게 접근했을 때 오히려 더 여러 번 보게 되는 영화입니다.
결론
러브 액추얼리는 완벽한 영화가 아닙니다. 불편한 에피소드도 있고, 조금 유치하다 싶은 전개도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모든 흠에도 불구하고 매년 12월이면 또 틀게 됩니다. 그 이유를 오래 생각해봤는데, 결국 이 영화가 보여주는 건 완벽한 사랑이 아니라 용기를 낸 사랑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히드로 공항 장면부터 샘이 공항을 가로질러 뛰어가는 마지막까지, 이 영화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는 것이 얼마나 무섭고 동시에 아름다운 일인지를 10개의 이야기로 보여줍니다. 처음 보는 분이라면 기대치를 조금 낮추고, 크리스마스 분위기 속에서 편하게 보시길 권합니다. 이미 본 분이라면 올해 12월에 한 번 더 꺼내보는 걸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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