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는 2024년 국내 개봉 당시 전작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대비 박스오피스 성적이 다소 아쉬웠지만, 영화를 직접 보고 나서는 그 평가가 좀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재작년 여름, 평일 휴가를 내고 혼자 영화관에 들어서던 그날, 저는 2시간 30분 내내 자리에서 제대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차량 액션 신: 매드맥스 시리즈가 독보적인 이유
이 영화의 본질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포스트 아포칼립스(Post-Apocalypse) 세계관 위에서 펼쳐지는 차량 기반 액션 블록버스터입니다. 여기서 포스트 아포칼립스란 핵전쟁이나 대재앙 이후 문명이 붕괴된 황무지를 배경으로 하는 장르적 설정을 뜻합니다. 『매드맥스』 시리즈는 이 장르 안에서 가장 독창적인 스타일을 구축한 작품으로 꼽힙니다.
제가 직접 보고 느낀 것은, 이 영화의 차량 액션이 여타 액션 블록버스터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이었습니다. 일반적인 차량 추격 장면이라면 좁은 골목을 질주하거나 총격을 주고받는 정도인데, 퓨리오사에서는 낙하산을 활용한 공중 강하 전술, 사슬에 달린 쇠공 형태의 근접 무기, 오토바이 저격 같은 장면들이 연이어 등장합니다. 처음 보는 방식임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럽게 납득이 됐습니다. 그 세계관 안에서 충분히 있을 법한 전투 방식처럼 느껴졌거든요.
특히 워 리그(War Rig)가 등장하는 장면은 압도적이었습니다. 워 리그란 이 세계관에서 자원 수송과 전투를 동시에 수행하는 대형 전투 트럭을 지칭하는 명칭으로, 퓨리오사가 사령관으로서 운용하는 핵심 병기입니다. 전체 상영 시간의 절반 이상이 액션으로 채워져 있다는 표현이 과장이 아닐 정도로, 이 워 리그를 중심으로 한 추격전과 방어전이 영화 전반을 이끌어 갑니다.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에서 확인할 수 있는 세계관의 핵심 구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시타델(Citadel): 임모탄 조가 지배하는 요새로, 지하수와 식량을 장악한 권력의 중심지
- 가스타운(Gastown): 연료를 관장하는 거점으로 세 세력의 동력원 역할을 담당
- 무기 농장(Bullet Farm): 탄약과 병기를 생산하는 시설로 군사력의 근간
이 세 거점이 상호 의존과 갈등 관계를 유지하며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데, 이 설정 자체가 이미 독창적입니다. 자원이 희소한 세계에서 무엇을 가진 자가 권력을 쥐는지를 보여주는 방식이 단순하면서도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저는 이 세계관을 옛날 비디오로 봤던 멜 깁슨 주연의 초기 시리즈에서부터 어느 정도 익숙하게 알고 있었는데, 그 기반 위에서 퓨리오사의 이야기가 얼마나 정교하게 확장됐는지를 보는 것도 꽤 흥미로웠습니다.
실제로 영화 산업에서 프리퀄(Prequel)이 흥행하기 어렵다는 분석은 꾸준히 나옵니다. 프리퀄이란 기존 작품보다 시간상 앞선 이야기를 다루는 전작 격 작품을 의미합니다. 결말을 이미 아는 상태에서 서사의 긴장감을 유지하는 것이 구조적으로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출처: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 퓨리오사는 그 한계를 액션의 밀도로 상당 부분 극복한 케이스라고 봅니다.
안야 테일러 조이와 서사의 온도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퀸즈 갬빗』에서 체스판 앞에 앉아 있던 그 배우가, 황무지 한복판에서 전투복을 걸치고 눈빛 하나로 장면을 장악할 줄은 미처 몰랐거든요. 안야 테일러 조이는 이 영화에서 대사가 거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퓨리오사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그리고 얼마나 깊은 분노를 품고 있는지가 느껴졌습니다. 그 눈빛 연기만큼은 정말이지 강렬했습니다.
다만,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르게 받아들여졌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제가 느낀 아쉬움은 퓨리오사라는 인물의 내면을 조금 더 들여다볼 기회가 부족했다는 점입니다. 납치된 이후 성장하는 과정, 잭이라는 인물과 신뢰를 쌓아가는 장면들이 좀 더 있었다면 캐릭터에 대한 몰입감이 한층 깊어졌을 것 같습니다. 이건 영화를 못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저 자신이 주인공의 심리적 변화에 감정적으로 동화되는 방식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걸 다시 확인한 것에 가깝습니다. 『더 배트맨』이나 『조커』처럼 캐릭터의 내면 갈등을 촘촘하게 쌓아 올리는 방식의 영화를 유독 좋아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그 결이 다른 이 영화에서 아쉬움을 느낀 것이겠지요.
크리스 햄스워스가 연기한 빌런 디멘투스는 연기 자체는 훌륭했습니다. 마블 시리즈의 토르와는 전혀 다른 결의 캐릭터를 자연스럽게 소화했다는 점에서 배우로서의 스펙트럼이 넓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다만 캐릭터 설계 면에서는, 위협적이라기보다는 다소 경박하게 느껴지는 지점이 있었습니다. 의도된 설정이라는 건 이해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조금 더 묵직한 빌런이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캐릭터 서사의 완성도와 관객 만족도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는 영화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다양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주인공의 심리적 여정이 풍부하게 묘사될수록 관객의 감정 이입 수준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출처: 한국영화진흥위원회(KOFIC)). 퓨리오사가 그 부분에서 아쉬움을 남긴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이 영화의 완성도 자체를 낮게 볼 이유는 없습니다. 액션 블록버스터로서 목표한 바는 충분히, 아니 그 이상으로 달성한 영화입니다.
영화를 보고 나와서 한동안 그 엔진 소리가 머릿속에 맴돌았습니다. 두 시간 반이 그렇게 빠르게 지나간 영화도 오랜만이었습니다. 퓨리오사는 분명히 전작 『분노의 도로』가 안겨줬던 그 뒤통수 맞는 충격만큼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제가 이미 이 세계관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지, 영화 자체의 문제는 아니라고 느꼈습니다. 이 장르와 이 세계관이 처음이신 분들이라면 오히려 그 충격을 더 크게 받을 수도 있습니다. 매드맥스 시리즈의 차량 액션을 대형 스크린에서 경험해보지 못하셨다면, 이 영화가 왜 그렇게 평가받는지 더 크게 느끼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